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개인이 이렇다면 국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가가 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 가운데서 ‘안보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국가가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행동이 주변 국가의 안보 불안을 일으켜 인근 국가 역시 군사력 증가로 대응하게 됨으로써, 도리어 안보 불안에 노출되는 딜레마적인 상황, 지금 우리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 같다.
북한 남침 전력(前歷)과 도발 위험은 압도적인 군사력의 한ㆍ미 동맹→체제 보장을 위한 북한 핵 개발→한ㆍ미 핵우산과 대규모 군사훈련→북한의 각종 핵무기 실험 등 무력시위로 치닫는다. 한편, 중국은 대만을 인질 삼아 연일 대미(對美) 무력시위를 하고 있고, 일본 또한 작금의 정세를 빌미로 자위대가 아닌 정식 군대를 보유하는 소위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의 전개 양상이다.
이 글의 제목을 <안보 딜레마 2>라고 한 것은 수년 전에 같은 제목의 글을 이 난(欄)에 기고한 적이 있어서다. 전문지식과 이해도 없고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은 평범한 소시민이 이런 주제의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은 일이지만 그만큼 불안하고, 조심스럽게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북핵(北核) 문제를 뉴스원(源)으로 하는 보도들이 넘치고, ‘핵’이니 ‘선제 타격’이니 하는 말이 어느새 예사롭게 쓰이는 일상어가 돼버렸다. 이렇게 된 데는 최근 일본에서 방류를 시작한 ‘핵 오염수’와 영화 <오펜하이머>도 한몫한 것 같다. 오펜하이머(John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2차 대전 중 미국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인류 최악의 발명품 원자탄 탄생에서도 ‘안보 딜레마’의 모습이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39년, 과학자들은 우라늄 핵분열 현상을 발견했고 이때 연쇄 반응과 함께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은 곧바로 원자탄 개발에 착수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미국은 독일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해 3년 만인 1945년 7월, 개발에 성공했다. 원자력 안전성이나 여기서 방출되는 갖가지 방사성 물질이 인간과 환경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기보다는 이 ‘비할 데 없는 압도적인 힘’을 독일보다 먼저 손에 넣는 것이 급했다. 핵 안보 딜레마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핵무기는 단 한 번 공격만으로도 한 국가를 무력화시키고 심지어는 소멸시켜 버릴 수도 있다. 강 대 강 대치의 끝은 어디일까? 선제 타격만이 해법인가? 핵우산은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 보호막이 될 수 있을까?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하지 않을까? 핵 보유가 역설적으로 핵 억지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호확증파괴, 공포의 균형 논리도 있지 않은가? 글쓴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이런 초보적인 질문들은 딜레마일까, 기우(杞憂)일까?
해법이 전쟁이 아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평화인데 모름지기 이 평화라는 것도 상대를 압도하는, 적어도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면 우리는 상대를 압도하는, 적어도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혹은 어떤 상황에서는 손을 거둘지도 모르는 남의 힘을 마냥 우리 것인 양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이는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 대안이 뭐냐’하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글쓴이의 수준으로는 이런 어려운 셈법은 모르겠거니와 대안을 제시할 능력도 없다. 다만, 정체 모를 막연한 불안감에 기우일지도 모를 걱정만 키우고 있을 뿐이다. 어려운 셈을 풀고 대안을 제시해 우리 불안감과 걱정을 해소해 주는 역할은 그럴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 몫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현재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9개국이다. 핵탄두는 모두 1만2천여개 이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