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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채는 나쁜 것일까? ②‘국가 부도’란 미신..
오피니언

정부부채는 나쁜 것일까? ②‘국가 부도’란 미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4/01 13:33 수정 2021.04.01 13:33

 
↑↑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코로나19로 서민이 경제적 고통을 당하는 동안 우리나라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소극적이었다. 이는 최근 IMF가 집계한 통계로도 나타난다. 2020년 말 기준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부 지출’은 경제 규모(GDP) 대비 13.6%로 선진 10개국 가운데 가장 적었다.(한국이 선진 10개국 안에 포함됐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나머지 9개국 평균은 28.4%로, 한국의 2배를 넘었다.

코로나19 대응 정부 지출 ‘방법’도 문제다. 이 정부 지출에는 가계와 기업의 감소한 소득을 직접 보전하는 현금성 지원과 급전을 융통하는 융자 모두를 포함한다. 아마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정부 지원은 현금성 지원일 것이다. 현금성 지원만 살펴보면,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3.4%로 꼴찌를 기록했고, 나머지 9개국 평균 12.1%의 1/4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재난 지원을 꺼리고 있다. 단적으로, 지난 3월 2일 제4차 재난지원금 지원 대책이 발표되고 나서, 정부의 ‘곳간지기’를 자처하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부채 증가를 걱정하는 글을 개인 페이스북에 올렸다.(언론플레이를 했다) 지면 관계상 그 글 전체를 여기에 인용할 수는 없지만, 그 의도는 ‘이러다 나라가 부도날 수 있다’는 협박에 가까웠다.

정부의 빚이 늘어나면 왜 안 된다는 말일까? 정부나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미래 세대에 부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와 함께 가장 빈번히 언급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국가 부도설’이다. 정부도 빚을 갚지 못해 자신의 차용증(국채)을 부도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고의가 아니라면, 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국가 부도설이 나온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전쟁 영화가 많다. 영화에서 왕은 이런저런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전쟁 비용 때문에 재정 압박을 받는다. 일부 영화에서는 왕실 재정이 파산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이것이 현대 국가의 정부 재정 원리에도 적용된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전제 군주제에서 왕(국가)조차 돈이 없어 파산하는데, 민주주의가 도입된 현대 정부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어이없게도, 이는 일반 대중들만의 오해(?)가 아니다. 소위 경제와 재정 전문가란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열심히 전파한다.

중세와 현대는 전혀 다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중세 시대에는 ‘금’이라는 현물이 돈이었다. 빚도 금으로 지고, 상환도 금으로 해야 했다. 그래서, 전쟁을 통해 약탈하든 금광을 개발하든, 금을 모아야 용병들에 대한 보수를 주고 전쟁 비용을 치를 수 있었다. 왕이든 누구든, 금으로 빚을 지고 금으로 상환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니까.(물론 부도를 내더라도 왕과 평민 혹은 노예에 대한 처분은 다를 수 있다)

현대의 돈과 재정은 이와 전혀 다르다. 지금은 그 누구도 ‘금’과 같은 현물로 빚을 지거나 상환하지 않는다. 현대 경제에서 돈은 금이나 그 어떠한 현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돈은 그저 장부상 기록, 즉 숫자일 뿐이다. 요즘은 장부를 컴퓨터로 입력하므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돈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이 장부에서 숫자를 지우면 돈이 사라진다. 코로나19 대응 재난지원금도 서민들 계좌에 키보드로 숫자를 입력하면 끝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정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행(중앙은행)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정부(한국은행)는 컴퓨터 키보드로 재정 장부에 입력해 필요한 돈을 창조해 지출한다. 세금은 그렇게 풀린 돈을 회수해 폐기하는 절차이지, 정부가 쓸 돈을 마련하는 수단이 아니다. 정부가 지출한 돈보다 거두어들인 세금이 적으면, 사람들은 이를 재정 적자라 부르고 걱정한다.

정부는 돈을 찍어낼 수 있으니, 정부의 빚은 부도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정부의 재정 적자가 나면 차용증을 쓰고 정부의 은행 계좌에 잔고를 나타내는 숫자를 채우는데, 이를 국채라 부른다. 모든 차용증이 그렇듯, 국채에도 상환 날짜(‘만기’라 부른다)가 적혀 있다. 만약 국채를 가진 누군가 만기에 현금으로 상환을 요구하면, 정부(한국은행)는 키보드로 그 사람의 계좌에 숫자를 입력하면 그만이다. 정부의 빚이 미래 세대의 빚이 아닌 가장 중요한 이유로 미래에 상환하지 않는 빚이란 점을 지적했듯, 국채 만기가 돌아오면 정부는 현금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새 국채로 바꿔준다. 국채를 사려는 사람(금융기관)이 많기 때문이다.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

진실이 이러한 데도, 의외로 많은 시민이 ‘국가 부도설’에 일정 정도 수긍하는 눈치다. 전문가와 언론이 이상한 ‘미신’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 미신이 그럴듯해 보이게 만드는 국가 부도 위기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아전인수식 억지에 불과하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다. 이들 정부가 국가부채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보수 정치인들도 국민에게 이 사례들을 수시로 상기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빚을 많이 지면 ‘베네수엘라 꼴’ 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베네수엘라 국가부채 위기는 ‘외환 위기’다. 베네수엘라는 자국 내에 생필품을 생산할 공장이 없어서, 정부가 국민을 위해 달러 빚을 내서 수입했다. 그런데 달러는 베네수엘라가 발행할 수 없는 ‘외국 돈’이다. 외국 돈은 무언가 수출하거나 자국 땅이라도 외국인에 팔아야 얻을 수 있는 돈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달러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찍어낼 수 없는 돈이다. 베네수엘라가 달러를 버는 방법은 석유 수출이었는데, 석유 가격이 하락하고 미국의 제재로 그것이 어렵게 됐다. 그래서 ‘달러 부채’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것이 베네수엘라 국가부채 위기의 진실이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빚이 ‘달러 빚’이 아니라 자국 통화(볼리바르)로 진 빚이었다면, 국가 부채 위기는 있을 수 없다.

자국 통화로 상환하기로 한 국채가 부도난 사례가 없다. 사실상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국민(특히 서민)을 지원하는 돈도 원화, 즉 정부(한국은행)가 찍어낼 수 있는 돈이다. 달러 빚을 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정부가 파산할지 모른다는 걱정은 ‘산신령이 노해서 홍수가 났으니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말과 사실상 다르지 않다.

정부가 적자를 보는 일은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부 지출은 국민에게는 소득이다. 정부가 지출하는 돈은 국민 호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정부 빚이 늘어나면 국민의 빚이 줄어든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은 주로 서민에게 집중됐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서민이고,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사업장도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다. 그래서 서민의 빚도 늘었다. 이 난리 통에도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치솟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다. 돈을 찍어서 쓸 수 있는 정부와 날품팔이 아니면 먹고 살길이 없는 서민, 누가 빚을 지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더 효율적일까?

이와 관련해 코로나19가 가르쳐준 교훈 하나를 상기하자. 그것은 ‘모두가 잘살아야, 나라도 잘산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서민이 쓰러지자, 부자들이 몰려있는 금융 시장도 흔들렸다.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경제 대응도 금융 시장 안정화 대책이었다. 이 사회와 경제가 서민의 노동과 소비에 의존하고 있음이 겉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서양에서는 이들을 ‘필수 노동자’(essential labor)라 부르며, ‘영웅’으로 칭송했다. 그런 서민이 파산하거나 빚에 쪼들리면, 경제 전체의 소비가 줄고, 그 여파로 판로가 막힌 기업도 어려워진다. 이는 다시 실업을 양산해 소득과 소비를 더 줄이는 악순환에 빠진다. 반대로, 정부가 서민을 지원해 이 악순환 고리를 끊으면, 코로나19 이후 경제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지금 정부 적자가 커지더라도 서민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이 이런 ‘경제적 효율성’마저 무시한다면, 다른 꿍꿍이 때문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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