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시인 |
“모든 여성 가출을 응원한다. 나는 노라가 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는 ‘노라 노(Nora Noh)’. 결핍과 분노를 가진 자만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임을 알게 된 여성 노명자. 그녀는 본명을 버리고 ‘노라’로 살아간다. 스스로 인생 자체를 반전(反轉)으로 만든 이다. 권투 선수처럼 도전해 보고 싶어 길을 떠난다. 17세에 결혼 불과 2년 후 이혼 후 ‘내 비위는 내가 맞추고 건달 정신으로 살고 싶어’ 미국행을 선택한다. 미국행 여권에 써넣은 두 번째 이름이었다.
그녀는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 배경을 살펴본 일이 있다. 그들 내면에는 모두 ‘분노’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진 이후다.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시댁과 갈등이 더 컸다)
노라노 양재학원, 복장학원이라는 간판을 기억한다면 ‘아, 그 사람’이라고 바로 눈치챈다. 샤넬, 디오르, 입생 로랑 등 디자이너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패션’이라는 말조차 생경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녀가 제일 존경하던 디자이너는 스페인 출신 발렌시아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던 시절부터 파리 패션계를 이끈 대표 주자였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도 ‘발렌시아가만이 완벽한 의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스승이었다’고 말할 정도. 디자인, 재단, 봉제까지 모든 의상을 혼자 해낸 장인(匠人)이자 예술가였다. 노라노 역시 그런 길을 걸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와 완성도는 그를 통해 배웠다.
책 표지 사진은 1953년 서울 종로에 자신 이름을 걸고 낸 의상실, ‘노라노의 집’을 개점했을 때 모습. |
최효안 작가가 쓴 ‘노라노 우리 패션사의 시작’은 다큐이자 평전이라 불러도 된다. 마치 한편 유려한 에세이를 읽은 느낌이다. 선생이 80세 되던 해인 2007년 어느 봄날부터 10여년간 취재한 결과물이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져 인터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杞憂였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타고난 위트와 유머 감각, 매력 있는 모습이 오히려 그녀를 압도했다.
그녀를 수식하는 말은 ‘최초’다. 아버지는 경성방송국 설립자 중 한 분이었고, 어머니는 국내 여성 아나운서 1호였다. 그래서일까? 패션쇼 개최, 기성복 도입, 전속 영화 의상 디자이너,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최장수 디자이너 등 모두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 이다. 한사람이 이뤄냈다고는 믿기 힘든 일을 해낸 여성, 개인 이력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가 됐다.
가수 윤복희 씨 비주얼 디렉트 담당자답게 미니스커트를 입혔고, 배우 엄앵란 씨에겐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여성 듀엣 펄시스터즈에겐 판탈롱(나팔바지)을 선보여 대중으로부터 환호받게 했다. 의상(衣裳)이 먼저 보이면 실패작이라고 생각했고, 그 역할에 어울리는 옷을 지어 입혔다.
배우 엄앵란 오드리 헵번 스타일 옷(왼쪽), 가수 윤복희 미니스커트(오른쪽). |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성복 시대를 여는 단초(端初)를 마련했다. 연예인들이 입고 있는 옷을 향한 일반인들 열망에 부응했다. 국산 원단을 고집한 이유도 한몫했다. 이 밖에 이희호 여사, 최은희, 조미령 씨도 그녀 옷을 사랑했다. 파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윤이상 선생을 만났고, 스페인 마드리드 한 클럽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장미꽃을 선물 받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긴 말이 많다. 미스코리아 출신 최승자, 발레 무용가 진수인, 패션디자인을 가르친 간호섭 교수 등. 소설가 박완서 선생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자서전, ‘노라노, 열정을 디자인하다’를 쓰기 위한 자문(諮問)을 듣기 위해 만나러 갔다. 나중 책이 나왔을 때 박 작가는 추천 글에 이런 말을 남겼다. ‘놀랍고 즐거운 책이다. 더 놀라운 일은 현재 정신 연령으로 윤색하지 않고 사실대로 기술한 이 영원한 현역의 맑고 투명한 정신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다독가이기도 했다. 집안 서가(書架) 한 면은 문학 관련 서적으로 채워져 있다. 그녀를 키운 한 조각은 책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10대 시절 기본 교양서적을 많이 읽어두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헨리크 입센 3막 희곡에서 발견한 ‘노라’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명망을 먼저 생각하는 순간 망한다는 신념,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는 자세를 살아 나가는 신조로 삼고 있다.
이 글을 쓰는데 뜬금없이 부산에서 패션 브랜드 ‘꽃꼬즌 미스 김’을 운영하는 ‘미스 김’이 생각났다. 지난 20여년간 의류 관련 일을 해오고 있는 분이다. 스스로 ‘N잡러’라고 하지만 본업은 옷이다. 열정(passion)이 패션(fashion)을 만든다. 사랑받는 일은 질기게, 오래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