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시인 |
하지만 야생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종일 햇빛을 받으며 자란 신선한 풀을 먹고 산다. 칼로리가 적고 먹이를 걱정하지 않고도 지천으로 널린 식물이어서 그렇다. 땅속뿌리는 거의 먹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토끼가 당근밭 근처에서 움직이는 걸 보고 그리 생각했을 수는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당근(뿌리)은 토끼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당분이 많아 당도(糖度)가 높고 비만, 위장 장애, 충치 발생률을 높인다. 간식으로는 적당하지만, 주식(主食)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재미있고 친절한 생태운동가로 잘 알려진 프랑스인 위고 클레망, ‘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는 이렇게 제목으로 우리 주의를 먼저 끌고 더 많은 ‘동물의 세계’로 장을 넓혀 그간 제멋대로 해석되고 이해한 그들 세계에 대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 책은 생물 다양성 붕괴와 기후위기 앞에서 동물들에 가해지는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동물이라는 말은 하찮은 존재, 얕잡아 봐도 되는 그런 부류로 생각하는 우리가 종종 잊고 있는 사실을 일깨운다. ‘인간도 동물’이다. 고등동물, 하등동물 구분은 여기선 의미가 없다. 인간은 다른 종(種)과 다르다는 무지를 깨트린다.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곡된 정보를 통해 무시, 혐오, 부당 착취, 폭력, 학대를 그간 정당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 책 표지. |
책도 이 점을 강조 ‘인간도 동물이다’로 시작, 동물농장 처참함을 보여주고, 쇼를 위해 준비된 동물, 사냥꾼 총소리를 멈추라는 호소, 모두를 위한 안식처는 어디인가를 묻는다.
인간은 특별하고 우월하다는 주장은 파괴하고 착취하기 위한 수단과 구실에 불과하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페이지를 넘겨도 된다. 흔히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을 한다. 이 의식에 담긴 차별,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 범죄이며 그간 동물을 하찮게 대한 무의식 발로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가?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맨몸으로 주먹 하나만 가지고 곰을 때려눕힐 수 있는가? 우사인 볼트가 치타보다 빠른가 말이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책임자인 동물 행동학자는 ‘인간은 겸손이 부족할뿐더러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부류’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인’이라고 불러도 된다.
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옥자’를 본 적 있다. 거대하지만 온순한 동물과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던 산골 소녀, 그들 우정은 탐욕스러운 대기업 덫에 걸려든다. ‘동물농장’에 갇히게 된 신세. 그곳은 과연 어떤 장소인가? 자연 대신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트럭에서 도살장까지가 운명 교차로다.
‘벅스 버니’ 캐릭터. |
종종 동물을 대신해 식단을 바꾸려는 운동에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일과 마주친다. 비건주의자는 그저 ‘잔인함’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일 뿐인데도 말이다. 동정심이 부족한 태도는 타인이 당하는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갇힌 동물은 제 살길을 잃었다. 수족관 돌고래는 관중을 위해 쇼하지 않는다. 즐거워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다. 구걸은 참 슬픈 일이다. 걸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더럽다고 여기는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간극이 크다. 나아가 동물원은 멸종 보호 장소가 아니다. 관람료를 지불하고 그들 슬픔을 구경하는 코스일 뿐이다.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 ‘노예의 방주’에 불과하다.
‘배너리(Venery)’ 반대 운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사냥개를 이용한 동물 죽이기다. 사냥은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동물을 스토킹하고 살해하며 즐기는 놀이로 변한 지 오래다. 종종 영화에서도 본 것처럼. 이 사냥감에 보호종도 피해가지는 못한다. 총만이 아니다. 독극물 살포도 포함된다.
또, 농작물 관리와 환경 관리란 명목으로 살해되는 동물은 얼마나 많은가? 정직하게 말하면 인간 영역 침범자로 간주한 살해 행위다. 고라니로 인한 피해는 예방을 하지 않은 농장주 책임이 먼저다. 이런 말이 있다. ‘여우가 밤에 닭장 문을 통해 들어온다는 것은 옛날부터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닭장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결과’라는.
사람(동물) 사이 평화 지대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자연을 우리 소유물로 생각하고 그들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착각을 거둘 때다. 인간만이 남은 세상에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책은 토끼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