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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의사가 늘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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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늘어야 나라가 산다

홈페이지 담당자 기자 119@dkbsoft.com 입력 2024/03/13 16:41 수정 2024.03.13 16:41

송영조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1980년대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 분야는 물리학, 화학과 같은 기초학문이었지, 의대가 아니었다. 당시에도 의대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 선호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탁월한 학생들이 선호하진 않았다. 가장 탁월한 친구들이 왜 물리학과 같은 기초학문을 선호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당시만 하더라도 학문적 호기심과 같은 낭만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당시에도 의사는 매우 좋은 수입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직업과 비교해 두드러진 차이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상쇄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말해 적성을 희생하며 무턱대고 의대에 진학해야 할 정도로 생활에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현재 시각에서 되돌아보면 가장 탁월했던 친구들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그 오판 덕택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의사 선호가 생각만큼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공계 학과를 중심으로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학생들이 골고루 배분되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을 통해 중진국엔 누구나 진입할 수 있지만,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 과제가 자연스럽게 달성된 것이다. 이공계를 졸업한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인력이 R&D를 열심히 수행한 덕택에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추격할 수 있었고, 2021년 UNCTAD가 우리나라를 개도국에서 선진국그룹으로 인정하는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기념비적 사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에 진입한 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현재 우리나라는 ‘의대 쏠림’이라는 심각한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다시 말해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거나 이를 위해 다른 이공계 분야를 포기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 경쟁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물론, 이는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20년 넘게 지속해온 현상이지만, 여전히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최근엔 오히려 더 악화돼 우리 사회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그렇다면 ‘의대 쏠림’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하면 완화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판단한다. 의대 정원은 1994년 3천300명 고점을 찍은 후 2006년 3천58명으로 줄어든 후 변화가 없었다. 의대 정원이 왜 줄었는지, 그리고 왜 그동안 변화가 없었는지 의아할 수 있는데, 2000년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해 의료계 요구를 들어준 결과이며, 문재인 정부가 2022학년도부터 연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증가시키려 시도했지만, 의료계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구 1천명당 우리나라 의사 수는 2021년 기준 OECD 평균 3.7명에 크게 못 미치는 2.6명에 불과하며, 그나마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1994년 GDP 대비 3.4%로 13조원이었던 의료비는 2019년 GDP 대비 8%로 154조원에 달할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다.(한겨레신문, 2023년 8월 1일, 한겨레신문 2023년 10월 16일, 시사인 2023년 7월 18일)

인구 고령화에 따라 의료 수요는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는데, 의사 공급은 정체되자 의사 소득과 임금노동자 간 소득 차이가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2020년 사이 의사 연봉은 연평균 5.2%씩 상승했다고 한다. 해당 국가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 평가(PPP) 환율 기준으로 살펴보면 2020년 봉직의(고용된 의사) 평균소득은 19만2천749달러로 자료가 있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임금노동자 평균소득 대비 차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개원의의 경우 6.8배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봉직의의 경우에도 4.4배로 칠레 4.7배 다음으로 크다.(한겨레신문 2023년 8월 1일) 이 말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의사 소득이 높은 것은 이상할 게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인적자원 배분을 왜곡할 정도로 너무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적성을 무시한 묻지 마 의대 지원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추론된다.

따라서 인적자원 배분을 정상화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수요와 공급 균형을 맞춰 과도한 소득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 물론, 의료 공공성과 일반 개인이 의료정보에 문외한인 점을 감안하면 의사 공급을 시장 원리에 맡길 순 없다. 그렇지만 지방의료원의 경우 4억원에 이르는 연봉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으며, 수도권 한 병원조차 의사를 구하지 못해 연봉 3억원대에 80대 의사를 고용했다는 사례는 의사 증원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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