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시인 |
‘찬이라곤 개다리소반 식은밥 곁에/ 돈다발처럼 포개진 삭은 콩잎/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술을 대면/ 가만히 몸을 누이던/ 단풍 콩잎 가족’ <‘단풍 콩잎 가족’ 부분>
세상에 돈다발처럼 포개진 삭은 콩잎이라니. 아버지 힘겨웠던 평생을 이렇게 한 장면으로 슬픔을 옭아매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이철 시인이 이번에는 동시집을 출간했다. ‘시골버스는 착하다’. 온몸으로 쓰고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표현은 헛말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쁨보다 슬픔 쪽에 더 가깝지만, 감싸 안는 따뜻함 때문에 다행히 눈물이 그렁그렁 괴는 선에서 멈췄다.
동시나 동화는 착한 사람이 써야 맞다. 착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라는 말은 아니다. 어린이 세계도 어른 못지않게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가 있다. 그런 지점을 잘 꿰뚫어 본 시선은 매우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동시 몇 편을 연이어 읽어본다.
동시집, ‘시골버스는 착하다’ 표지. |
‘할머니는/ 여름방학 때마다// “올해는 멧돼지 몰래 고구마를 심었당께”// 멧돼지야,/ 이번 한 번만/ 우리 할머니 얘기 못 들은 걸로 해 줄래?’ <‘지리산 멧돼지에게’ 전부>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고사는 일이 참 고달프지만, 이런 씨알도 안 먹힐 부탁을 하는 아이 심정이 고스란히 나타나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버지는 지난여름/ 언덕길을 오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그날도 달이 뜰 때까지/ 말똥 굴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가도/ 절대 기죽지 말라고// 보름달 아래/ 어깨를 펴고/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라고’ <‘말똥구리네 가훈’ 전부>
언제나 식구들 뒷줄에 계셔 존재감도 흐릿한 아버지도 명언을 남기고 돌아가시는 법. 생각해 보면 그 무거운 뒷모습이 우리를 살린 게 아니었나.
‘할머니는 그냥 할머닌 줄 알았다/ 용돈 주고/ 머리 쓰다듬어주는// 할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인 줄만 알았다// 비녀 꽂고/ 지팡이 짚는// 할머니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 故 정막순 님(여, 92세)’ <‘정막순’ 전부>
그랬다. 할머니 이름은 알지 못했다. 늘 챙겨주시던 꼬부랑 할매. 슬픔이 해일(海溢)처럼 밀려온다. 이름을 불러주자. 마지막에 알아채는 불효 없도록.
‘어디서 낑낑대는 소리 들리면/ 잠 못 드는 사람이 있다// 쓰레기장이든 하수구든/ 집 잃은 소리 찾아/ 밥 찾아 챙겨주고/ 라면 박스에 이불솜 깔아주고서야/ 잠드는 사람이 있다// 엄마보다 열여섯 살 적은/ 누나보다 일곱 살 많은/ 외할머니가 웬수 웬수 하는/ 막내 이모’ <‘막내 이모’ 전부>
“지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하는 꾸지람 소리를 들린다. 막내 이모는 그런 사람으로 종종 구박받았나 보다. 하지만 저런 마음씨는 쉬 흉내 낼 수 없다.
시는 자백이고 고백이다. 아무도 그에게 ‘불어라, 바른대로 말해라’고 다그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비켜설 수 없게 만드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도 놓칠 수 없다. 아니, 놓치기 싫다. 한 편을 넘기면 또 한 편이 끌고 오는 행과 연은 아프다 못해 저리다.
유난히 가족 서사가 많다. 그때 불러내지 못한 이름을 이제야 풀어놓는다. 아버지, 어머니, 이모, 이웃, 꽃, 키우던 동물까지 죄다 소집해 애정을 표현한다.
과거 이야기가 태반이지만, 지나간 것을 시쳇말로 패스(pass)하지 않고 독자에게 다시 토스(toss)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고 잊히지 않는 ‘그때’가 남아 있으니깐.
작가는 동시집에 그림이 없어서 읽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한 편, 한 편 읽어 갈수록 그림이 그려지는 마술 같은 일이 눈 앞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