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시인 |
진주,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어느 읍(邑)에 독립서점 ‘보틀북스’를 운영하는 채도운 대표가 쓴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는 ‘불안’을 ‘불만’으로 여기지 않고 제대로 자신을 찾아 나가는 일상을 수놓듯 써 내려간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을 담은 풀 스토리가 아니라 풀지 못한 숙제를 받아들고 끙끙거리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먼저, 그가 읽은 보통 책, ‘불안’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외모는 삶의 가장 비민주적인 부분에 속한다. 외모는 마치 복권 같고 여러분은 아마 당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에 당신은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생긴 건 그들 탓이나 공이 아니다. 그렇게 생긴 것뿐이다.’
그녀도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반듯한 직장이 있었고 고정 급여를 받았고 찬란한 미래가 반짝 보이기도 했다. ‘반짝’이 문제였다. 힘들었고 지쳤다. 더불어 산다는 말은 꾀임이었고, 종속(從屬)과 굴욕(屈辱)을 강요받았다. 탈출을 꿈꿔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망망대해에 누가 그를 건사해 줄 수 있는가?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책 표지. |
용기를 내 책방을 차렸다. 독립(獨立)이라 말하고 자립(自立)을 꿈꾸면서. ‘꿈은 잠잘 때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하필이면 코로나19가 시작됐고 통장 잔고(殘高)는 비어가고 마음도 버거움에 ‘텅텅’ 소리가 났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애매한’ 상태에 맞닥뜨렸다.
오늘은 몇 잔을 팔까? 몇 권을 팔까? 걱정하지 않는 척 아무렇지 않게 전전긍긍하던 때 찾아온 손님은 ‘엄마’였다. 그렇지 않아도 딸이 차린 책방이 잘 되길 바라며 식혜. 생강차, 꽃차 등을 종종 만들어 팔아보라 했는데 ‘때수건’이라니. 북카페가 잡화점 같은 분위기 되는 게 싫어 집으로 가져와 자신 팔과 다리 때를 미는 데 사용했다. 때는 잘 밀렸다고 한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인견(人絹)으로 만든 소형, 대형 마스크를 각 100장씩 만들어 왔다. 이때는 짜증이 났다. ‘카페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엄마는 자신도 일하고 싶었고, 딸을 응원하고도 싶었다. ‘밤새 만든’ 엄마와 ‘날마다 고민’하는 책방지기 마음은 교집합을 이뤘다. 응원을 받지 못하는 선수나 팀은 불행한 법. 이후 ‘나니아 잡화점’처럼 모든 것을 팔고 모든 것을 나누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불행이란 말을 거꾸로 써보면 행불이다. 그녀는 행방불명(行方不明)되지 않았다. 급박한 혹은 겁박하는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낸 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생각하고 산다. 미래는 당연히 오기 마련이니까. 삶은 ‘버티기’다.
‘보틀북스’는 내비게이션으로도 찾아가기 힘든 곳에 있는 책방이다. 선택했지만 후회가 일상인 책방지기 고군분투기. 하지만 글은 어둡지 않다. 오히려 ‘명랑’을 넘어 ‘맹랑’하다. 자기를 일러바치는 문장은 책 끝으로 갈수록 눈물샘 쏟게 만든다. 8평 남짓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마어마하다. 다채 다양은 무지개 색깔이 왜 그런지 알려준다.
별명을 붙여준다면 ‘진격 공주’라 말하고 싶다. 후퇴, 후회하지 않는 삶이다. 전진(前進)은 그녀 삶, 트레이드마크(trademark)다. 진주시 외곽 M읍에서 애매하게 사는 책방주인은 그간 스트레스로 이마도 M이 되었다고 한다.
책 속,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 |
이 책에는 주인장 넋두리만 질펀하게 깔려 있지 않다. 보듬고 사는 법에 관해 저자 고민이 군데군데 남겨져 있다. 그녀는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카페를 열고 처음에는 ‘손님’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찾아가고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달 말 두 번째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생각이었나 봐요’가 나온다니 기대가 크다. 결심이 보이고 결단이 보이는 넥스트(next)다. 속편은 기대를 저버린다는 왠지 더 기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도운 작가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써 두었다. “아직도 나는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앞, 뒤의 경쟁자를 의식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직도 애매하게 중간을 달리는 중이다. 그것도 즐겁게! 즐겁게 달리는 중이다.”
유난히 ‘중’(中)을 강조한다. 그녀가 ‘중2’가 아닌 이상 더 크게 모두를 안고 갈 게 틀림없다. 그녀 삶은 현재진행형(ing)이다.
내년부터는 정부가 그동안 생색낸 ‘작은 서점 지원사업’도 불투명하다. 예산도 격감하고 따라서 책 읽는 사회 분위기도 식을까 걱정된다. 책은 ‘빵’이다. 하물며 ‘마음의 양식’이라고 오래전 합의한 바 있지 않나? 동네 책방주인은 독립군이다. 무장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들을 응원하는 방법, 여러분이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친 동네 책방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