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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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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65] ‘바다’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선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23/10/25 09:08 수정 2023.10.25 10:00
두 번째 바다/ 권일

이기철
시인
그는 자신을 시인(時人)이라 부른다. 시인(詩人)이란 말을 살짝 비튼 셈인데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쯤으로 이해해도 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간 해온 작업을 들춰보다 보면 치열한 현장을 밀도 있게 표현해 왔기 때문에 이 말은 적확하고 적당하다.

지난해 8월, ‘꺼리는 것끼리’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는데, 이 기획전에서 그는 ‘마당’이라는 공간을 선택, 설치 작업을 통해 독특한 사진들을 선보였다. 모두가 외면하는 쓰레기를 재해석이라는 렌즈를 통해 새 생명을 부여했다.

폐비닐, 폐플라스틱, 폐지 등은 말 그대로 쓸모없게 된 ‘패’(敗)를 보여준다. 결과는 부패(腐敗)에 이르게 하고 유독한 물질과 악취를 동반하는 결과에 이른다. 나쁜 쪽으로만 바라보는 사람, 쓸모없이 된 폐인(廢人)도 포함되지 않을까?

작가는 ‘내버려 둔’, ‘내버려진’ 사물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이를 추적하는 끈질긴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어 9월에는 깡통(CAN)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열었다. 대량 생산, 무한 소비를 하면서도 무관심하게 버려지는 ‘깡통’ 운명을 통해 버려진 것들은 자원 순환을 통해 반드시 재발견돼야 함을 역설했다.

사진가 권일을 ‘리사이클링 프로젝트’ 작가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쓰레기 같은 인간과 방치하고 상관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들춰내고 포용(包容)하고 포옹(抱擁)한다. 지구 환경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메시지는 분명하고 확고하다. 이쁘게 보이는 것들 뒷면에는 얼마나 많은 추악함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방법을 장면 속에 무엇을 넣듯 ‘미장센’ 효과를 극대화했다.

권일 사진집, ‘두 번째 바다’ 표지.

올해 들어서 그는 드디어 오랫동안 구상해 온 대주제인 ‘바다’에 관해 구체성, 심도 있는 작업에 집중했다. 지난달에는 부산, 울산, 포항에서 바다로 배경으로 사진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과 함께 ‘보소 바다 씨’라는 제목으로 동해(東海)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준 바 있다.

권 작가는 20여년 전, ‘니르바나 블루’ 전시를 준비한 적 있다. 자연이 발산하는 빛이 투사된 블루(Blue)는 밤과 새벽 사이에 잠시 잠깐 찾아오는 신(神)이 보낸 문자라는 점을 경험했다. 이후 ‘그랑블루’, 거대한 푸른색을 지닌 바다는 이렇게 작가 가슴에 새겨지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집이 ‘두 번째 바다’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정동방(正東方) 쪽으로 30분쯤 달리면 ‘첫 번째 바다’가 있다. 수없이 바라봤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변화무쌍한 바다 얼굴을 지금도 자주 대하고 있다.

사진집에 수록된 작품들.

이번 사진집에서 보여주는 ‘블루’는 ‘진짜 바다’는 아니다. 바다라는 이미지를 빌려와 그간 작업해 온 주제를 더 깊숙하게 심해(心海)로 끌고 들어간다. 파도를 연상케 하는 ‘뒤집힘’과 그 속을 ‘뒤집어 봄’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이 사진집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점은 바다를 체험한 사람이 가진 육체와 정신을 통해 교정 시각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두 번째 바다’는 작가 특기인 빼어나게 아름다운 장치 기법을 통해 순수했던 처음, 깨끗했던 바다(sea)를 바라보고, 보여준다(see)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윤회(輪廻)라는 용어 대신 재생(再生)이라는 단어 선택은 적절하다. 해양 생태계에 관한 깊은 관심은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고 사유하며 이를 시각화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다. ‘철 지난 바닷가’를 걷는 쓸쓸함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곳에 두고 온 미련을 비롯한 묵은 때를 떠 올리게 한다.

사진집에 수록된 작품들.

사진집에서 발견하는 ‘바다 너머 바다’를 읽어내는 일은 독자들 몫이다. 바다 몸짓을 기억하고 이를 증거로 남기는 증언자 역할을 자처한 권일 사진가 행보는 당분간 바다 쪽으로 오래 머물 것이 틀림없다.

작가 자신이 ‘소금기’에 절여진 이라 그런지 두 번째 바다는 더 깊고 푸르며 눈물처럼 짜다.
사진집 출간에 즈음해 마련하는 사진전도 눈여겨 볼만하다.

부산 금정구에 있는 ‘아트 스페이스 이신’에서 11월 3일부터 19일까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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