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조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
물론, 정답률이 낮다고 무조건 교과과정을 벗어난 것으로 단정할 순 없다. 그렇지만 정답률이 터무니없다면 정상적인 교육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수능 변별력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수학영역의 경우 킬러문항 번호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인데, 대학에서 경제수학을 강의한 필자가 보기에도 이런 문제를 정해진 시간 내에 누가 풀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더욱이 대학 특정 학과를 제외하면, 이런 문항을 중등교육과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도 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킬러문항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매우 나쁘지만,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입시를 야기해 공정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기 때문에 더 문제다. 킬러문항이 존재하는 수능 체제에서는 이를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는가 없는가가 부모 경제력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킬러문항에 대비하려면 고가의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 경제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학생의 노력이 있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킬러문항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이는 매우 불공정한 결과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대체로 고소득층 자녀로 알려진 것은 이와 같은 불공정이 크게 작용한 탓으로 짐작된다.
이런 이유로 부모 경제력에 대한 의존이 완화된 공정한 입시를 만들려면 진작부터 킬러문항을 배제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대학과 특정 학과에 대한 서열화와 선호가 공고한 상황이다 보니 킬러문항의 존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한 것이 현실이었다. 학부모와 학생들만 보더라도 킬러문항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짐작건대 킬러문항 대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한 고소득층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경우 킬러문항 배제에 대한 불만이 대단할 것이다. 소위 상위권으로 간주되는 특정 대학의 반발과 대응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당장 사교육에 대한 의존이 크게 줄어들지 여부 또한 확실하지 않다. 킬러문항을 배제하더라도 변별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므로 킬러문항보다 약하지만, 다소 어려운 문제가 여전히 출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킬러문항을 선뜻 배제하지 못한 것은 이런 어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은 곤란을 감안하면, 킬러문항 배제 결단을 공정한 입시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한다. 다소 어려운 문항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모 경제력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예측이 충족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변화에 따른 작은 갈등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으로 간주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