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당신을 최대한 다정하게 맞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당신을 최대한 사랑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당신을 보듬지 않은 것 같아요. 모든 외롭고 외로운 순간들에/ 그리고 저는 ‘당신이 내 연인이라 행복했다’고 당신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이 첫 번째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면 정말 미안해요. 제 눈이 멀었어요/ 당신의 달콤한 사랑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제게, 제게 말해주세요/ 당신이 만족할 수 있도록 제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소소한 것도 대화했어야 했지만, 저는 절대 시간을 내지 않았어요/ 당신은 항상 제 마음속에 있었는데, 항상 제 마음속에 있었는데.’
이기철
시
‘올웨이즈 온 마이 마인드’(Always on My Mind)라는 노래 가사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여러 가수가 불렀다. 언제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될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 부족함으로 인한 회한(悔恨)이 가슴을 때릴 때다.
강애리자 씨가 쓴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는 이 노래를 내내 떠올리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분홍립스틱’으로 잘 알려진 가수이기도 하다. 함께 얼굴을 보며 살아갈 시간이 6개월밖에 남아있지 않은 남편이 어느 날 아내에게 이 노래를 불러준다. 그는 모든 암(癌) 중 가장 생존율이 낮다는 췌장암에 걸려 절망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평소 건강만큼은 자신하던 남편에게 닥친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식. 이후 모든 삶은 헝클어지고 만다. 하지만 부부는 이 난관을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 손을 잡고 파도를 넘기 시작한다.
불안, 아픔, 상실감은 삶을 갉아먹고 모든 일상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현실이 된다. 췌장암 4기는 돌이킬 수 없는 말기 암 상태다. 암 덩어리가 3~4cm만 돼도 수술 불가능할 정도다. 남편은 처음 진단 당시 이미 7cm 넘었다. 여기에다 간으로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이때 이들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중꺾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그까짓 암 덩어리 내가 꼭꼭 씹어서 삼켜 없애버릴 거야. 자기 절대 못 보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다.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책 표지. |
치료 과정을 차분하게 써 내려간 에피소드는 암울한 기색이 없다. 물론 ‘속울음’은 눈치챌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려운 법이다. 그간 삶을 모두 부정해야 하는 참혹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투병기는 극복기로 막을 내리지만 ‘신앙 간증’하듯 서술하지 않는다. 담담함을 내세우지만, 그사이에 놓인 행간에는 수많은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 딱 맞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의료진에 무한 신뢰를 나타냈다. 신통방통한 민간요법이 있다는 소문과 권함에 혹할 법도 하건만 조용히 거절했다.
책 편집이 기막히다. 아내가 집필했지만 글 말미에는 남편이 한 말을 기록해 두는 방법을 택했다. 아내가 말하는 부분 제목 아래에는 우산(☂)이, 남편이 한마디씩 흘린 말 위에는 눈물방울(????)이 표시돼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기호이지만, 지켜주고 싶은 심정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고 세세히 챙기는 마음씨를 보게 된다.
항암치료 결과가 다소 호전되고 있던 어느 날, 부부는 여행을 떠난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내는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남편 없이 혼자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를 생각하다가 노래 가사를 만든다. 삼십 분 만에 작사를 마치고 그 유명한 ‘분홍립스틱’ 작곡가 강인구 씨에게 보낸다.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 시간도 딱 삼십 분 걸렸다. 구조라 해변에서 생긴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당신과 손잡고 걸어가는 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당신과 함께 먹는 따스한 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나를 보고 웃어주는 당신의 얼굴/ 세상에서 제일 신비한 소리 나에게 속삭이는 당신 목소리/ 나 태어나 첫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당신이 아니었지만/ 마지막 감는 내 눈 속에는 당신을 담고 가고 싶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을 찾을 거야/ 먼지가 되어 떠돌아다녀도 우린 또다시 만날 거야.’<강애리자 작사, 강인구 작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애리자, 박용수 부부 프로필 사진. |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정신을 추스르게 되면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생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말이다. 다행히 이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위로하고 안아주며 용기를 북돋아 준 이들이 많이 있었다. 흔히 인복(人福)이 많다는 말.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작은별 부부’를 통해 소상공인 돕기를 펼친 결과 큰 상을 받기도 했다. 평소 남을 위한 일에 앞장선 부부에게 보낸 응원은 그저 생긴 게 아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고난을 이겨낸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인간극장’과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은 ‘나는 이렇게 암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보다 신뢰와 사랑에 관한 보고서다. 곁들여 가족과 이웃, 지인들에 보내는 고마움을 담았다. 긍정(肯定)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 이제 부부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행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