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을 오래 하여 그 힘을 얻고 보면 열 가지 공덕(功德)이 있다”고 원불교의 경전인 『정전(正典)』, ‘좌선의 공덕’에 밝힌 바가 있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이다. 수행자는 정신을 잃을 만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중심이 잘 잡혀 판단이나 감정이 여기저기로 휩쓸리지 않는다. 이러한 균형 잡힌 상태를 쇠로 된 기둥(鐵柱)의 중심, 돌로 된 외벽(石壁)의 표면과 같다고 비유한다.
명상을 통해 몸의 기운이 정화되고 아랫배 하단전에 집중되면(centering) 마음도 번뇌에 흔들리지 않고 부동(不動)하게 된다. 전신의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머리로 쏠려 판단과 분별로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단전에 집중되기 때문에 한 생각에 흔들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게 된다.
선(禪)으로 단전에 더 깊이 집중할수록 복잡한 세간사(世間事)에 경거망동하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공포도 점점 사소한 일이 된다. 단전은 삶과 죽음의 중심이기 때문에 마음이 단전과 일치되면 삶이라는 경기장에서 용맹하게 전진할 힘을 얻게 된다.
정성이 담긴 명상을 통해 공부인은 점차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현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빠짐없이 지켜볼 수 있다. 이를 ‘바른 알아차림(正知)’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 의식 속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마음을 쓰는 것을 ‘바른 마음챙김(正念)’이라고 한다.
명상하는 중 마음 안과 밖의 자극에 의해 평상시 갖고 있던 생각이나 고정관념이 변화하게 된다. 이때, 마음이 이러한 자극에 쏠리거나 끌려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떠오르는 그것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면 그동안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나누고 고집하는 작용인 ‘분별성과 주착심’에서 점차 해방된다. 이 상태에 이르면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안정하게 된다.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의 힘이 강해지면 ‘나(Ego)’라는 제한된 범주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욕구나 생각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일어나는 육근(눈, 귀, 코, 혀, 몸, 마음) 작용을 일말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세상의 모든 변화와 인간관계 그리고 욕구, 생각, 감정, 감각 등으로 구성된 의식 위에 떠오르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수용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마치 큰 배가 닻을 굳게 내리고 있으면 폭풍우 속에서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듯 우리 마음도 든든하게 고정돼 때때로 흔들릴 수는 있으나, 결국 중심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물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명상은 떠돌아다니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생각은 명료하게 하며 ‘나’ 또는 ‘내 것’이라고 믿어 왔던 집착에서 점차 벗어나 일거수일투족에 경거망동이 사라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마음’ 그 자체에서도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변화를 얻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