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태 인문연구공동체 로두스 대표 육군3사관학교 인문학처 강사 |
과거에 비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태극전사’라 부른다. 전사(戰士)란 말 그대로 ‘전쟁을 하는 사람’이다. 전사들이라서 ‘올림픽 참가’가 아니라 ‘올림픽 출전(出戰)’ 즉,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나 일본과 경기는 그야말로 양국 간 전쟁인 ‘한일전(戰)’이다. 왜 스포츠를 섬뜩한 전쟁에 비유하는 것인가. 우리는 오랜 세월을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 배우며 자라왔다.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든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민족이 왜 순수한 스포츠조차 전쟁이라 여기는 것일까?
선수들은 전사이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쓴 전쟁에 나서는 병사가 되어 상대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이겨야만, 이겨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이다. 지면 안 된다. 오로지 승리만 있을 뿐이다. 우승 혹은 1위를 해야만 한다. 전쟁에서 2등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각 선수는 그야말로 세계적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다. 그들과 당당히 시합하는 자체가 대단한 일임에도 우리는 은연중에 금메달과 1등을 강요한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금메달 못지않게 값지다. 하지만 은메달과 동메달이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하나만 못하다. 왜 금메달만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전쟁이라 생각하니 무조건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개수로 국가별 순위를 정한다. 가령 우리가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총 3개의 메달을 획득하고, 일본이 금메달 0개, 은메달 5개, 동메달 5개, 총 10개의 메달을 획득했다면 우리의 순위가 더 높다. 일본이 우리보다 3배 이상 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어도 금메달이 없으니 우리 순위가 더 높은 것이다. 물론 입장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도 이런 식으로 순위를 정하는 것일까? 올림픽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별 순위를 산정하는 방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올림픽은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 개개인’ 간 경쟁이지 국가 간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헌장」 제6조는 “올림픽 대회는 선수 개인 혹은 팀 간의 경쟁이다.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가별 메달 순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관련 투자나 광고 협찬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국가별 메달 순위가 필요할 때가 있어서 실제로는 많은 국가가 순위를 매기고 있다. 공식적인 순위가 없으니 국가별로 메달 집계 방식이 달라도 상관이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은 대체로 금메달 수가 아니라 총 메달 수로 순위를 정한다. 물론 금메달 수가 많으면 총 메달 수도 더 많은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순위 집계 방식에 따른 차이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거 어떤 개그맨이 유행시킨 “1등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이 떠오른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은 “올림픽 정신이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하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 했다. 쿠베르탱이 주창한 이 올림픽 정신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땀 흘려 최선을 다한 선수라면 그가 어떤 국가에 소속했는지 또 승패와 관계없이 누구나 그를 존중해 줘야 한다. 올림픽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국경을 초월한 스포츠 대회이다.
우리는 그동안 스포츠에서 거둔 개인적인 성취를 곧바로 국가의 성과에 결부해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던 예전에는 더 심하게 스포츠의 승리를 국가의 승리로 포장했다. 군사정권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하는 선수들에게 어김없이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딸’이라 치켜세웠다. IMF 사태로 힘겨웠던 시절 해외에서 들려오는 박찬호와 박세리의 활약은 곧바로 한국의 자부심으로 연결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한국인이 세계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것이 곧바로 한국의 자랑이 되고 한국의 우수함을 증명한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 딱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를 석권하고, 손흥민이 유럽축구리그를 호령하는 영광은 그들 개인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 아니다. 그들 개인이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물을 국가가 가로채서는 안 된다.
8월의 한 가운데에는 광복절도 있었다.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 직후에 맞이하는 광복절이어서인지 한국인들의 나라 사랑이 엉뚱한 곳에서 발현되기도 했다. 우리가 과거 일제의 침략으로 고통받았던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대다수 일본인은 침략에 직접 가담하지도 않았고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지도 않은, 그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일부의 모습일지 모르겠으나(일부가 아닐 수도 있겠다) 단지 일본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이유로 이번 올림픽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일본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정국과 여름 무더위에 지쳤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올림픽을 준비해서 세계인들을 성의껏 맞이했다. 사실 일본 내 여론은 올림픽 개최 반대가 훨씬 높았다. 하지만 돈벌이에 눈이 먼 IOC의 압박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정을 뻔히 아는 한국 언론은 앞장서서 선수촌 침대가 이렇다, 도시락이 저렇다, 연일 부정 가득한 기사를 쏟아내기만 했지, 일본이 대회 운영을 잘하고 있는 내용이나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양국 사이 과거 역사적 악연, 침략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 태도, 일부 극우 인사들의 혐한 발언 등으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의 반일정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올림픽이 정말 망하기를 기원하는 듯한 각종 기사와 거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수많은 한국인의 모습은 정말 가만히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한일 간 경기를 전쟁에 비유하고, 일본의 올림픽 준비를 폄하하며, 끔찍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또한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저급한 발상이다.
국가 내지 민족과 그 구성원들이 모두 하나일 수 없음에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동일성 혹은 같은 것에 집착해 왔다. 한 가족이라고 해도 제각각 생각과 모습이 다른데 하물며 한 국가의 모든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이러한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사교육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한국사를 식민지 시기 민족해방운동 차원에서, 또 해방 후 신국가 건설 과정에서 강조된 민족사적인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보편적 시각과 문화교류사적인 기억을 상기하는 방향의 역사 서술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인자를 과거처럼 생물학적 유전자에 국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변화된 모습이 많이 감지되었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탁구선수 신유빈이나 높이뛰기의 우상혁에게도 많은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한 단계 위로 올라서고 있구나”하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길게 드리우고 있다. 민족주의를 천박한 국수주의로 바꿔놓은 게 누구일까? 폐쇄적 민족주의는 오히려 열등감의 발로가 아닐까? 스포츠는 결코 전쟁일 수 없다. 선수가 곧 국가와 민족이어서도 안 된다. 이제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준인 손흥민과 류현진의 멋진 플레이를, 그 자체를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