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선(禪)수련에 정성을 들여 적공(積功)하다 뜻하지 않게 신(神), 조상(祖上)이나 신앙의 대상, 종교적 위인들을 만나거나 극락과 천국 같은 특별한 경계를 보게 되는 등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명상의 경지가 무르익어 마음이 고요해지면 무의식 세계 또는 내면의 그림자가 작동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는 내 마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이러한 경계가 실상(實相)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좌복 위에 앉아도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눈앞에서 나타거나 음성으로 들리게 되면 정신적인 혼돈이나 왜곡된 자기 확신에 빠질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그는 수행하는 도중에 혹 반딧불 같이 나타나는 허령(虛靈)에 불과하나니 그대는 정신을 차려 그 마음을 제거하라. 만일 그것에 낙을 붙이면 큰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사도(邪道)에 떨어져서 아수라(阿修羅)의 유가 되기 쉽나니 어찌 정법 문하에 그런 것을 용납하리요”(원불교 대종경 수행품 39장)라고 엄하게 경책하고 있다.

어지간한 자각이 아닌 이상 신비한 경계를 체험하고 나면 이것이 수행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맹신하고 고집해 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작은 번뇌 하나 해결할 수 없는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는 수행이 익어가는 증거는 되지만 공부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밥이 잘 돼간다고 중간에 뜸도 들이지 않고 숟가락부터 드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의식과 같은 자신의 내면에서 억눌려 있는 그림자로부터 일어나는 환각에 한 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참으로 어렵다. 마치 극장 스크린에 비친 슈퍼맨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해 망토를 두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는 것과 같다. 누구나 이런 모습을 보면 비웃고 말겠지만 정작 뛰어내린 사람이 자신이라면 과연 태연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명상 수행 중에 나타난 신비한 체험은 대상을 실상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공부를 방해하는 마장(魔障)이 된다.

특정한 기대나 바람 등 대상에 자신을 투사(投射)해 나타난 일시적 현상으로 공부를 마쳤다고 여긴다면 여간 딱한 일이 아니다. 그 점을 깊이 자각해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우직하게 한 길로 걸어가야 한다.

옛날에 어떤 공부인이 좌선을 할 때마다 큰 거미 한 마리가 줄을 타고 내려와 눈앞에 대롱대롱 매달려 수행을 방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승에게 어찌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선을 하는 중에 거미가 나타나거든 붓에 먹물을 묻혀 가지고 있다가 얼른 거미의 배에 표시를 해 놓으라고 일러줬다. 참선을 시작하고 조금 있다 다시 거미가 나타나자 제자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 표시를 해 놓았다. 선을 마치고 살펴보니 먹물로 된 표시는 거미가 아니라 자기 배에 나타나 있었다고 한다.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불러들인 현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