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
명상으로 자신의 신체를 한 곳에 고정시켜 놓으면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몸의 감각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게 된다. 마치 컵에 물과 황토를 섞어 흔들었다가 가만히 놓아두면 잠시 후 맑은 물은 위로 모이고 무거운 황토는 아래로 고이는 것과 같다. 몸이 안정되면 마음도 고요해진다. 이런 평온 상태(靜定)에 접어들면 전에 느낄 수 없었던 현상을 몸과 마음이 객관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물은 물대로 황토는 황토대로 서로 분리돼 자리를 잡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선을 통해 마음공부가 무르익으면 높은 지혜와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되거나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 기억이나 트라우마 등이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 드디어 마음의 닫힌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통해 내면을 환기(換氣)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뿐 아니라 몸에서도 갖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상쾌함 또는 통증이 나타난다. 그러한 현상 중 하나가 얼굴이나 몸이 가려운 것이다. 실제로 좌선을 하다 보면 이럴 때 무척이나 성가시다. 간지러운 곳으로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면 어느덧 긁고 싶어서 안달하거나 억지로 힘을 써서 참게 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좌선 초반에 단전에만 집중하다 이후에 몸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 확장되면 전신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느낌을 더 예민하게 느끼게 돼 그곳으로 의식이 급격히 쏠리게 된다. 이때 몸에서는 통증, 경련, 저림, 열기, 냉기 등 다양한 감각이 나타날 수 있다. 선을 닦는 공부인은 이런 증상이 생겼을 경우 무시하거나 참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감각이 일어났구나’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다만, 이러한 감각을 주시하는 중에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곤란하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메타인지(Meta-cognition)’이다. 이는 학자에 따라 ‘생각에 대한 생각’, ‘자기관찰(Self-observation) 능력’,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 ‘인식 넘어선 인식’,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찍이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고 말했다.
명상을 통해 메타인지를 일깨우는 방법은 예를 들어, 단순히 ‘가렵다’가 아니라 ‘이 가려움 나의 팔에서 나타났다’ 또는 ‘아프다’가 아니라 ‘이 통증은 나의 다리에서 나는 것이다’라며 ‘나’와 ‘나의 가려움, 통증’을 개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나의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처리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내 몸이라는 한계를 넘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명상은 오래 앉기나 참는 연습이 아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속지 말고 ‘나’와 그 현상들을 분리해 객관화시키는 것이 명상의 요체다. 마치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내가 관객이 돼 거리를 두고 바라보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