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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일자리 보장제’를 제안하자(1)..
오피니언

‘일자리 보장제’를 제안하자(1)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8/05 14:06 수정 2021.08.05 14:06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민주당이 대선 후보 경선을 시작하면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에는 지방선거도 있다. 모든 선거가 그렇듯, 공약(公約)이 난무한다. 그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 경우를 많이 보아온 터라, 공약(公約)을 크게 기대하진 않는다. 그래도, 공약(空約)이 될망정 공약(公約)에 오르지 않으면 아쉬운 이슈도 있다. ‘일자리’ 대책이 그런 것이다. 두 번에 걸쳐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대규모 비자발적 실업은 가장 중요한 민생 문제다. 노동 말고는 먹고살 길이 없는 국민 대부분에게 실업은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실업자가 증가한 점을 차치하고라도, 평소에도 우리나라 공식 실업자는 대략 100만명에 달한다. 숨겨진 실업자까지 더하면, 실업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자동화니 인공지능(AI)이니,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실업은 개인과 가정을 파괴한다. 이러한 개인적 비용(이 말은 너무 약하다!) 외에도, 실업은 온갖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 우선, 실업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원인 노동력 손실을 의미한다. 실업자 100만명이 모두 고용돼 2020년 1인당 평균 GDP만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약 37조원이나 된다. 둘째, 실업자가 많아지면, 실업급여에서부터 온갖 고용정책에 더 많은 재정이 투입된다. 2021년에도 고용정책으로만 약 30조5천억원의 천문학적 예산이 책정돼 있다. 이 돈은 세금을 통해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비용이다. 셋째, 실업자는 알코올과 약물 중독, 육체적ㆍ정신적 질병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이 또한 사회복지와 국민건강보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모두가 분담한다. 넷째, 실업은 범죄(재범), 마약, 노숙자 등 사회 병리 현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고, 그 대응 정책 비용도 모든 국민이 나눠지는 짐이다. 다섯째, 실업은 소득 불평등을 악화하고, 이는 다시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OECD, IMF 등 보수적 국제경제기구조차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렇게 실업은 당사자 개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다른 말로, 실업은 당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직면한 문제다.

비용이라는 세속적 이유 외에도,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일할 권리(취업)는 시민의 기본권으로 인정돼왔다. 인간에게 ‘일’은 완전한 인격체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이해된다. 우선, 일할 권리는 경제적 안정을 제공해 고차원적 자아실현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다. 둘째, 인간에게 일은 단지 경제적 수단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타인과 유대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생물학적 생존만큼이 중요한 ‘사회적 생존’을 유지한다. 또한, 이러한 협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달성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UN 헌장, 세계 인권 선언, 유럽 사회 헌장 등에서 일할 권리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실업을 해소하는 일은 최고의 복지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제도 혜택을 누리려면 우선 취업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는 사회보험(국민연금, 고용보험, 국민건강보험, 산업재해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 주로 취업자가 사회보험에 가입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공무원이 퇴직하고 상대적으로 넉넉한 공무원연금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연금을 납부하기 때문이다. 퇴직 후 받는 연금액은 연금 납부액과 기간에 따라 결정되는데,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연금의 큰 부분이 복리 이자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처럼 실직 없이 오래 취업해야 유리하다는 말이다. 기타 사회보험도 마찬가지다. 거꾸로 말하면, 실업은 사회복지제도(사회보험)를 위협한다. 실업자가 많아지면 사회보험료 징수는 줄고 지급은 증가해 기금 고갈 문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기준 15~64세 인구 3천700만명 중 공적연금 가입자 비중은 약 65%, 고용보험 가입자는 약 37%에 지나지 않는다. 실업자가 많거나, 의무가입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불안정 일자리 종사자가 그만큼 많음을 의미한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사회복지제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실업 대책은 복지제도를 튼튼히 하는 일이기도 하다.

2021년 고용정책 예산 30조5천억원이 보여주듯, 정부는 나름대로 실업 해소를 위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실업정책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고용정책 대부분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 취업을 돕거나’ ‘기업에 고용을 독려’하는 사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정부 고용정책은 취업을 간접적으로만 돕는다. 이는 고용 원인에 대한 정책 결정자의 인식을 반영한다. 첫째, 구직을 돕는 정책은 실업 원인이 개인 능력 부족에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실업자의 태만한 생활 태도를 비난하는 윤리적 평가가 아니더라도, 이는 취업 능력만 갖추면 누구나 취업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둘째, 기업에 고용을 독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은 ‘고용은 기업이 한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이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규제를 완화(가령, 최저임금제 폐지나 노동권 제한 등)해야 한다는 제도적 개혁 정책으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개인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시장과 기업을 활용하는 고용정책은 결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정책 모두를 시행했음에도 실업자 수는 줄지 않았던 지난 신자유주 40년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지난 20년 동안 개개인의 학력과 능력은 유례없이 발전했지만, 청년 실업은 오히려 악화했다.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이는 ‘눈높이가 높아진 고학력ㆍ고숙련 구직자는 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가?’란 질문엔 답을 하지 못한다. 눈높이가 높아졌다면, 수준 높은 일자리는 왜 부족한가? 또한, 지난 40년 동안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담론이 지배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시장과 기업 자유가 확대됐다. 하지만 실업이 감소하거나, 일자리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실업이 증가하고, 고용도 불안정해진 것은 그럴만한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구조적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없는 체제다. 첫째,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경영하지, 고용 극대화를 목표로 하진 않는다. 그래서 기업에 제공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은 순수 ‘보조금’일 뿐이다. 둘째, 개별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고용하기로 한 인원수를 모두 더했을 때, 그것이 구직자 수와 일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렇게 무정부적이다. 셋째, 경제 전체 일자리 총량을 제한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이 작동한다. 기업이 고용을 늘리려면 ‘사업’이 잘돼야 한다. 사업이 잘된다는 말은 누군가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잘 사준다(소비)는 말이다. 그런데 물건을 사는 사람이란 결국 기업이 어떻게든 임금을 깎으려고 하는 종업원과 실업자다. 실업이 증가하고 취업하더라도 소득이 적으면 소비도 적다. 최대한 고용을 줄이고 임금을 깎으려는 기업의 노력이 자신의 존재 기반을 허무는 꼴이다. 개별적으로는 최선이 전체적으로 최선이 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유식한 말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 부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실업 원인이 개인 능력 부족이나 시장에 대한 규제 때문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시장과 기업은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부족한 일자리는 정부가 직접 창조할 수 있다는 과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앞서, 우리는 이미 엄청난 실업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을 봤다. 당장 눈에 보이는 비용으로, 고용정책 예산 30조5천억원이면 100만명 실업자 전체를 2021년 최저임금 수준에서 모두 고용하고도 남는다. 연봉 2천200만원×100만명=22조원. 너무나 단순한 산수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편견과 지배 담론에 지나치게 경도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100만명 이상을 직접 고용하는 일이 가능할까? 다음 칼럼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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