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한 곳에 한 해에 정부 광고 70억원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지역신문발전기금 70억원으로 70개 지역지를 나눠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도 직접 지원사업은 30억원에 불과합니다. 30억원도 다 일일이 정산해야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론장을 지키는 지역주간지는 위로는 전국일간지의 독과점 행태에, 아래로는 사이비언론의 난립에 숨 쉴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른지역언론연대 이영아 회장의 발제는 절박했다. 원칙과 기준 자체가 없는 정부와 지자체 광고의 막무가내 집행으로 지역신문이 고사 위기에 놓인 가운데 새로운 미디어바우처 법안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7월 5일 오후 2시 30분부터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린 ‘독과점 언론시장 개선과 분권 민주주의를 위한 미디어바우처법 제정 방향’ 토론회에는 전국 풀뿌리 주간신문 구성원 50명이 어려운 시간을 쪼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좌장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주간지 우선지원선정사협의회 오원집 회장이 맡았다.
민형배 국회의원실 주최, 바른지역언론연대, 지역신문발전기금 주간지 우선지원선정사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 정부 광고와 연계한 미디어바우처법과 관련, 미디어바우처에는 대체로 공감하나 이를 정부 광고와 연계하는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바른지역언론연대 이영아 회장 |
“정부 광고 기준 제대로 세워 풀뿌리 언론에 배당 필요”
이런 가운데 발제를 맡은 이영아 회장은 미디어바우처법이 분권민주주의에 방점을 찍고, 시ㆍ군 단위 지역주간지가 건강하게 지속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발제에서 소수 전국지가 언론시장을 독과점하는 중앙집권체제에서 벗어나 다수 지역신문을 통한 언론시장 다원화에 이바지하는 자치분권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신문 육성을 위한 투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투자라고 단언했다. 정부 광고를 배정하는 한국ABC협회 부수공인제도는 신뢰도가 이미 바닥을 쳤으며, 지자체가 광고를 집행할 때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광고의 한국언론진흥재단 위탁 대행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지자체 광고는 위탁기능이 거의 없고 그냥 거치는 절차인데도 위탁수수료를 가져가며, 그렇게 조성한 언론진흥기금은 전국지와 일부 지방일간지에 집중되며 지역주간지에는 거의 혜택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승원 국회의원(민주, 경기 수원 갑) 입법안대로 할 경우 다소 정파적인 전국일간지나 인터넷신문이 미디어바우처 역시 독점하면서 애초 취지대로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쿼터제를 적용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지역주간지에 50% 이상 배당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 광고든, 지자체 광고든 아무런 원칙과 기준 없이 정말 무분별하게 친소관계나 유불리로 나눠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느 매체에 얼마를 줬냐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공개될 경우 언론사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 미제출한다’는 국민권익위 공문을 빌미로 알려주지 않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공공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집행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데, 이조차도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미디어바우처법이 제대로 된 정부 광고 기준을 잡아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지자체도 그 기준과 원칙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미디어바우처, 저는 의미 있는 화두를 김승원 의원님이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 국민에게 나눠준다고 해도 덩치나 체급 자체가 전국일간지와 지역주간지는 워낙 차이가 있기 때문에 쿼터제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미디어바우처법 실행 목적을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지역 공론장을 지킨다는 취지 아래 지역주간지에 쿼터를 50% 정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김승원 의원의 법률안 제안 이유와 관련 ‘시민참여를 통한 공공저널리즘 활성화, 시민의 미디어 이용기본권 실현, 분권민주주의 성장을 위한 건강한 지역언론 육성 등 미디어바우처 제도의 근원적 가치를 담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안 목적에도 분권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건강한 지역언론 육성 등 목적을 포함해야 지역신문 지원 내용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미디어바우처 대상에는 발행주기 준수와 자체 생산기사 50% 이상, 최저임금 4대 보험 적용 등 언론사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 요건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바우처 후원비율 제한을 일괄적으로 정하지 말고, 쿼터제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지역주간지에 대한 비율을 높이자며, 전국지와 전문지 20%, 지방지 30%, 지역지 50%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디어바우처법, 시도는 좋지만, 제대로 될지 우려도
김승원 의원은 1년 정부 광고비 약 1조800억원 가운데 8천400억원을 18세 이상 국민 4천200만명에게 1인당 2만원씩 제공하자는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가 바닥이라 별도 예산 마련이 어려우니 이렇게 정부 광고 예산을 활용해 국민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민이 직접 좋은 언론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이비언론을 가리고, 권력과 자본의 부조리,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기사, 공동체의 미래를 다루는 기사, 지역의 미담 사례 등 골고루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취지”라고 법안을 설명했다.
그는 언론전문가들이 지적한 정부 광고와 미디어바우처가 연계된 점과 관련해 우려를 표하지만, 이에 대해 이는 타협의 산물이고, 언론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법안 취지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조ㆍ중ㆍ동 등 주요 전국일간지의 경우 각자 바우처를 0.5%(8천400억원 기준 최대 42억원)으로 상한선을 뒀다. 아무리 많이 받아도 현재보다 절반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동시에 포털 개혁도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역마다 일정 비율의 지역 기사를 노출하도록 포털과 제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선호 책임연구위원은 “정부와 공공기관, 언론에서도 여러 혼란이 예상되지만, 기존 재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며 “KBS가 수신료를 올리기로 한 만큼 올린 비율의 일정 부분도 이 재원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민진영 사무처장은 마이너스 바우처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부 광고와 연계한 미디어바우처가 여러 가지로 혼재돼 있어 제 효과가 날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민 사무처장은 “미디어바우처법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이너스 바우처라며 실제 마이너스를 받아 환수조치가 되면 건강한 신문을 독자가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적 갈등으로 특정 언론에 대한 마이너스 바우처 운동이 시작돼서 혼란이 올 수 있다”며 “이 법안은 정부 광고와 미디어바우처가 연계되면서 혼재돼 있어 어떤 효과가 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상적으로 좋은 기사라고 하면 탐사기획 보도를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결과적으로 대부분 사회부 기자, 정치부 기자에게 해당 수당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 기타 문화부 기자, 사진 기자 등은 똑같이 일하고도 배당받지 못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며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연예기사나 스포츠 기사를 무한 클릭했을 때 상황에 대한 염려 또한 든다”고 덧붙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이준형 신문정책위원은 미디어바우처를 정부 광고 집행 지표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전문위원은 “정부 광고는 별도 지표를 새롭게 마련해야 하고, 미디어바우처는 별도 재원을 마련해 시민이 직접 구독하고 후원하는 경험을 쌓아 미디어 구독과 후원 문화 저변 확대를 이뤄야 한다”며 “포털이 아닌 매체별 홈페이지를 구축해 그곳에서 후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매체별 홈페이지에 들어가 꼼꼼하게 읽고, 금액을 후원해야 절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효과도 가질 수 있다”며 “미디어바우처가 새로운 길이고 변수가 많은 아이디어이므로 특정 지역에서 시범 적용해 개선해가는 과정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승원 의원 발의안, “한계 있지만, 수정ㆍ보완해 연내 통과시켜야”
옥천신문 황민호 상임이사는 “정부 광고뿐만 아니라 지자체 광고 기준 원칙을 갖고 제대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와 지자체 광고 집행 시 위원회를 구성해 구독을 기반으로 한 정량평가와 저널리즘에 대한 정성평가를 포함해 합리적인 광고 배분 과정이 있어야 하고, 현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을 별도 재원으로 확대해 보편적인 미디어바우처로 확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바른지역언론연대 이영아 회장은 “미디어바우처법은 정부 광고와 국민평가제도가 연동되는 법으로 여러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보이나, 골격을 유지하고 일부 수정해서 통과되면 현장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지역신문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발제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법안이 언론의 다원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지역신문에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힘써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를 주최한 전남일보 기자 출신 민형배 국회의원(민주, 광주 광산을)은 축사에서 “나도 지역언론 종사자였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며 “옛 동지들을 만나 정말 반갑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풀뿌리 언론, 시민 생활에 밀착한 언론이 제대로 서야 하며 이를 위해 이번 토론회가 제대로 성과를 내 법안이 잘 통과되길 빈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오원집 선정사협의회 회장은 “이번에 발의된 미디어바우처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쓰레기 같은 언론이 사라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승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미디어바우처법’은?
<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과 <정부광고법> 개정안으로 나뉜다. 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란 블록체인기술을 이용해 각 시민에게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언론사에 제공할 수 있는 증표인 ‘미디어바우처’와 비선호 의사 표시에 쓰는 증표인 ‘마이너스바우처’를 지급하고, 언론사를 평가하도록 한 제도다. 정부광고법 개정안은 언론사마다 이 바우처 최종 산정 결과에 맞춰 정부광고비를 배분하도록 했다.
미디어바우처 전에 언론주권자 배당도 논의돼
2019년 3월 경기도의회가 발주하고 한신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경기도 언론 공공성 확대를 위한 언론기본소득 실현방안’에서는 미디어바우처와 흡사한 언론주권자 배당이 논의된 바 있다. 이는 이번 토론회에서 경기민언련 민진영 사무처장이 언급한 바 있다. 언론주권자 배당은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언론인과 언론사 지원에만 쓸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아이디어로 1인당 1년에 10만원의 쿠폰을 지급하면 약 4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후원하지 않는 금액은 국고로 귀속되고, 기사 후원금액은 언론인과 언론사에 일정 비율로 나눠 지급한다. 보고서는 경기도 공보비 일부를 활용해 3년간 시범사업을 제한했으며, 한 명의 기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 한도를 정하고 플랫폼은 직접 홈페이지를 개설 운영하거나 포털과 제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디어바우처 해외에서는?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선호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미디어정책 리포트를 통해 미디어바우처를 저널리즘을 위한 공적 지원제도로 제안한 바 있다. 리포트에 따르면 시카고대학 조지 스티글러 경제국가연구소 산하 디지털 플랫폼 연구위원회는 2019년 디지털 환경에서 저널리즘을 위한 지원정책으로 미디어바우처를 제안했다. 미국 재무부가 성인 1인당 연간 50달러(약 6만원)의 바우처를 발행하면, 원하는 언론사에 5달러씩 10회에 나눠 기부하는 식이다.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언론사는 ▶1인 이상 정규직 언론인 고용 ▶공적 관심의 뉴스 생산 ▶투명한 경영공시 ▶윤리강령 준수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바우처 기부는 특정 언론사에 집중될 수 없으며, 1개 언론사가 전체 바우처 금액의 1%를 초과해 받을 수 없다. 할당받았지만 기부하지 않아 남은 바우처의 경우 다른 시민이 기부한 바우처 비율에 맞춰 일괄 재분배할 수 있다. 바우처 기부자는 익명 처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