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
둘째, 외국인 자본은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는 증거가 있다. 1997~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 규모는 2001년 100조8천억원에서 2020년 말 764조3천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7.6배 증가한 수치고, 20년 동안 연평균 10.7%로 안정적으로 증가해 왔다는 뜻이다. 외국인 자본이 우리나라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외국인 자본은 수익성 좋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국인 자본이 투자하기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경제가 왜 후진국이며 약소국이란 말일까.
셋째,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의 그것보다 낮을 때조차 외국인 자본은 이탈하지 않았다. 외국인 자본은 전 세계적 관점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나라의 자산에 투자한다. 금리는 외국인 투자 자본의 수익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고, 기준금리는 정부가 보증하는 수익률이다. 통상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미국 금리보다 높아야 외국인 자본 이탈 없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신흥국’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은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웃돈(신흥국 리스크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외국인 자본을 붙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는 신흥국 프리미엄을 나타내는 지표고, 그것이 작을수록 미국 경제 대비 상대적으로 강건한 경제임을 의미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 경제 대비 크게 열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의 그것보다 오히려 낮았지만, 외국인 자본이 이탈하지 않았던 경우가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았던 ‘금리역전’은 1999년 7월에서 2001년 3월까지 19개월 동안,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까지 24개월 동안,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창궐 이전 2018년 3월 22일부터 2020년 3월 2일까지 약 24개월 동안, 역대 세 번 있었다. 매번의 금리역전은 약 2년 동안 지속됐지만, 대규모 외국인 자본 이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림 1은 가장 최근의 경우를 보여준다. 첫 번째 그림의 음영 부분은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았던 시기와 그 정도를 보여주고, 아래 그림은 같은 기간에 외국인 투자 금액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의 그것보다 낮았던 기간에 외국인 자본이 이탈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이는, 외국인 자본이 볼 때,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기대 수익률이 금리 격차를 능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말로, 투자 수익을 낳는 우리나라 경제의 종합 역량이 미국 경제에 크게 뒤진다 할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나라가 후진국이고, 정부의 재정정책마저 외국인 자본의 눈치를 보며 시행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사례를 보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고통을 당하고 있던 작년 9월 10일, 우리나라 기재부는 7억유로 규모의 5년물 유로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줄여서 ‘외평채’)을 마이너스 금리(-0.059%)로 발행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 정부가 5년 후 7억유로를 갚기로 하고, 당장 7억200만유로를 받았다는 말이다. 돈을 빌리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오히려 200만유로의 선(先)이자를 받았다고?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비기축통화국(=신흥국, 경제 약소국)의 설움을 강변해 온 홍남기 기재부 장관 본인이 페이스북에 쓴 설명을 직접 들어 보자. “코로나19 확산세 지속에 따른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 경제에 굳건한 신뢰를 보여준 해외 투자자가 많았다” 정부는 당초 5억유로만 빌리려 했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발행하는 차용증(외평채)을 사겠다는 투자자들 요구가 몰려, 예정보다 2억유로 더 많은 7억유로를 빌렸다는 후문이 들려오기도 한다.(한국경제신문, 2020년 9월 10일자) 이래도 우리나라가 맨날 위태위태한 나라일까.
정리하자. 외국인 자본 이탈이 무서워 정부가 할 일 못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가 달러화 보유국이 아니라서 당하는 설움은 분명 있다. 2008년 금융위기처럼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곳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외국인 자본이 급속히 이탈하고, 그 결과 환율이 상승하는 등 공포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는 정부채무가 그 원인이 아니다.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이 문제다. 또한, 우리나라가 후진국이고 약소국이어서 외국인 자본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도 과도한 열패감의 표현일 뿐이다. 외환위기 가능성 때문에 지금처럼 위기의 시기에조차 정부채무를 늘릴 수 없다는 주장은 ‘교통사고가 날 수 있으니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어이가 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