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정심관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핵심 감정과 번뇌의 유형에 따라 닦게 이끄는 맞춤형 명상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부정관은 시체가 썩는 과정이나 우리 몸의 더러운 부분을 관찰해 몸에 대한 애착이나 감각적 욕망 등을 끊는 수행법으로 ‘죽음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인도는 화장(火葬)이나 풍장(風葬)으로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시신을 목격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또한, 습한 기후 때문에 시신이 금방 부패했으므로 부정관을 닦기가 지금보다 수월했다. 시신을 가까이 접하기 어려운 현대의 수행자들은 병원이나 장례식장 또는 시신의 사진을 걸어놓고 부정관을 닦는 경우가 있다. 필자도 몇 년 전 태국의 한 사찰에 있는 명상센터 벽에 걸린 부패하는 시신의 사진을 보고 여러 가지 감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붓다 당시에 부정관은 독신으로 수행해야 하는 수행자들이 갖게 될 이성에 대한 음심(淫心)을 제거하기 위해 강조된 수행법이다. 시신이 부패해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관찰하게 되면 나중에도 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자신이나 타인의 몸에 대한 육체적 욕망이나 애착이 끊어지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육체와 현세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갖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에서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수행법이기도 하다. 또한, 죽음이라는 주제가 주는 강렬한 인상만큼 시신을 접하기 힘든 현대인에게는 충격을 줄 수 있는 명상이라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이 언제고 나에게 당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복귀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오늘은 승리했지만, 내일 패배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죽음을 관조할수록 삶도 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