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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1] 오봉산에서 만난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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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1] 오봉산에서 만난 양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3/25 15:45 수정 2021.03.25 03:45

 
↑↑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 양산시민신문  
1.

삼한시대의 양산은 한반도 남동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변진 24국 중에서 불사국(不斯國)과 호로국(戶路國)에 속했다. 665년(문무왕 5)에 신라가 상주(上州: 지금의 尙州)ㆍ하주(下州: 지금의 昌寧)를 개편해 양산지방에 삽량주(揷良州)를 신설했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양산은 지리적으로 김해와 경주 사이에 위치해 일찍부터 신라와 가야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이다. 양산이 신라 세력권에 편입된 이래로 낙동강과 경주를 연결하는 긴 통로였던 양산은 외세의 침략에 자주 시달린 곳이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또 995년 7월에 전국을 10도로 나눴는데, 이때 양주군은 경주목 소속이었다. 940년(태조 23)에 양주(良州)는 양주(梁州)로 개칭됐다.

양산은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부산 북부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높은 산들이 상당히 많다. 북부의 하북ㆍ웅상에는 영축산(1천59m), 시살등(981m), 정족산(700m), 천성산(922m), 대운산(742m)이, 서부의 원동ㆍ물금에는 염수봉(816m), 천태산(631m), 토곡산(855m), 오봉산(450m)이, 그리고 부산 접경지구인 남부의 동면에는 장군봉(750m), 금정산(801m) 등이 솟아 있다. 오봉산은 양산의 중심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이다.

오봉산은 전국에 수십 곳 넘게 있다. 가까운 곳으로 부산 강서구와 해운대구에 각 하나씩 2곳이 있고, 경주와 포항에도 있다. 양산의 오봉산은 최치원과 관련된 유적이 있는 임경대로 예전부터 유명하다. 오봉산은 경남 양산시 물금읍과 원동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봉산(530m)은 이름 그대로 5개 봉우리로 이뤄진 능선이다. 제1봉이 낙동강 바로 동쪽에 자리 잡았고, 그 반대편 북동쪽에 제5봉(449m)이 있어 산줄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낮은 봉우리에서 마지막에 높은 봉우리를 이룬 셈이다. 오봉의 맞은편 북쪽에는 토곡산이 자리 잡아 가지산~신불산~영축산으로 이어오던 영남알프스가 낙동강에 이르러 마지막 끝맺음을 한 것이 이 오봉산이다.

2.
낙동강 조망 둘레길과 오봉산 산책길을 연이어서 걸었다. 대략 9~10km의 거리, 산길이어도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니다. 낙동강 조망 둘레길의 출발지는 화제고개 아래에 있는데, 그 직전에 새미기고개가 있다. 새미기고개는 어곡리와 화제리를 잇는 고개다. 어곡은 어실(御室)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진성여왕릉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1, 신라본기에 899년(진성왕 11)에 “왕이 북궁(北宮)에서 돌아가심에 진성이라 시호하고 황산(黃山)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황산(물금을 비롯한 양산 서쪽의 산 일대를 총칭한 것으로 고증됨) 중 해당 지역이 바로 어곡동이라는 설이다. 지금도 용선마을에는 능곡과 능묘라는 지명이 구전되고 있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어실이 어곡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화제고개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와 교동을 연결하는 고개다. 화제리 외화(外花)마을 입구에는 약 1천평 정도의 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이 형상이 마치 매화의 수꽃 형상을 하고, 맞은편 명언(明彦)마을 뒤편 연화봉은 매화의 암꽃 형상을 하고 있어, 이 두 형상의 중간에 소하천이 흐르는 지형을 꽃으로 형상화해 ‘사람이 꽃을 건넌다’라는 뜻으로 ‘화제(花濟)’라 했다고 한다. 낙동강 조망 둘레길은 지그재그로 계속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짧은 너럭바위 구간을 지나면 초록의 술 밖으로 산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토곡산이 보이고 부산 인근의 대표적인 바위산인 선암산이 눈에 아른거린다. 길은 너무 잘 다듬어져 있다. 걷는 내내 초록으로 우거져 있어 더운 여름에도 햇볕을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다. 3km 정도를 지나면 온통 소나무다.

↑↑ 임경대에서 바라본 일몰
ⓒ 양산시민신문

임경사를 지나 암벽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낙동강 풍경은 그대로 한 폭 그림이다. 산 넘어 산이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산들, 그 속 사람 사는 공간들이 작은 섬 같다. 임경대는 오봉산 최고의 절경이다. 임경대가 유명해진 것은 신라시대 대문장가 최치원 때문이다. 최치원이 임경대에 관한 시를 썼는데, 이후 김극기 등 문인들이 너도나도 최치원의 뒤를 이어 임경대에 관한 시를 남겼다. 임경대에 관한 최치원의 시는 그의 문집인 『고운집(孤雲集)』 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 권19에 ‘황산강 임경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황산강(黃山江)은 낙동강의 옛 이름이다.

내 낀 봉우리는 우뚝우뚝, 강물은 출렁출렁
거울 속의 인가는 푸른 봉우리를 마주했네
외로운 돛배는 바람을 싣고 어디로 가는고
별안간에 새의 자취 아득도 하구나


煙巒簇簇水溶溶
鏡裏人家對碧峯
何處孤帆飽風去
瞥然飛鳥杳無蹤

3.
임경대 육거리부터는 낙동강 조망 둘레길 대신 오봉산 산책길이 시작된다. 오봉산 산책길만 걸으려면 정암사에서 올라오면 된다. 임경대 육거리에는 이정표들이 정면 방향으로 나란히 표기되어 있어서 조금 헷갈린다. 오봉산 산책길은 경사가 거의 없다. 대체로 평탄한 길인 셈이다. 96계단 사거리를 지나면 팔각정 산책로 갈림길이 나온다. 임경대 육거리에서 팔각정 갈림길까지 곳곳에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팔각정 산책로 갈림길에서 왼쪽 작은 오봉산 방향으로 오른다. 여기서부터 임도를 만나는 능선 오름길까지의 경사 있는 구간이 전체 구간 중 가장 힘든 곳이다. 안부 임도에서 왼쪽으로 가면 오봉산 정상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선암산(매바위)로, 직진하면 화제고개로 갈 수 있다. 화제고개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낙동강 조망 둘레길이다. 오봉산을 둘레길 따라 한 바퀴 돌면 덕계·서창 지역을 제외한 양산을 대부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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