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철 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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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은 정인(情人)이었던 이영도 시인과 20여년간 교유하면서 오천통이 넘는 편지를 남겼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식솔들에게 이 모양 저 모양 갖은 일들에 대해 잔소리로 들릴 만큼 세세한 편지를 남겼다.
안부를 묻는 일은 그리움과 애틋함, 절절함이 묻어나는 인연 파편이다. 그 아릿한 상처는 오래도록 남는 법이다. 그들은 가고 없어도.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살아계실 적에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1973년 1월 18일, 이오덕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쓴 동화작가 권정생을 찾아갔다. 당시 이오덕의 나이 48세, 권정생은 36세. 두 사람은 그때부터 이오덕이 세상을 떠난 2003년까지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 편지에는 두 사람이 이뤄온 우정이 산맥처럼 우렁우렁 펼쳐진다. 문단(文壇) 소식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 이를테면 이발, 원고료, 반찬, 아픈 몸 등 맨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 한길사에서 출간한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 초판본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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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책 제목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였는데,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회수되는 사태를 겪었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2015년 출판사 양철북에서 제목을 바꿔 낸 책이다.
사연은 이렇다. 당시 거창 샛별초등학교 주중식 교장이 두 분 우정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출판사(한길사)에 제의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오덕 선생은 돌아가신 뒤였고, 권정생 선생께는 출판된 이후 편지로 이를 알렸는데, 권 선생이 편지 속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더러 있어 불편하다는 심정을 내비치며 회수해줄 것을 출판사측에 요청했다. 이익을 도모하려는 저의가 깔린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실례가 되고 만 셈이다.
서점에 깔린 부수는 초판본 3천부 중 1천 200부였는데 500부가 눈 깜짝할 사이 팔려나가 버린 것. 예나 지금이나 팬심은 무서운 법.
↑↑ 백창우 씨가 펴낸 시디가 포함된 책,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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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이 책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는 이야깃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구하려는 탐서가(探書家)들은 눈에 불을 켜고 헌책방을 비롯, 알고 지내는 장서가, 헌책 동호회 등을 이 잡듯이 뒤져 구하려 혈안이 되고 있다.
에피소드 하나. 절판되거나 구하기 힘든 책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에 어느 날 올라온 판매자 글. 요약하면 이렇다. 이 책을 단돈 500원에 판다는 공지문. 하지만 반드시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을 가져와야 판다는 것이다.
해당 동전은 당시 많이 만들어지지 않아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었고 상태가 좋으면 30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던 시점이다. 결국, 책값은 500원이 아닌 30만원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온라인 중고서점에서는 최소 5만9천원에 판매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 분이 나눈, 슬퍼서 더욱 아름다운 편지를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시 쓰고 노래하는 백창우 씨가 동일 제목으로 ‘아주 특별한 노래 상자,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를 2010년 펴낸 적 있다. 여기에는 두 분 선생님 외 임길택 선생님도 포함돼 있다. 스무 편 시와 노래가 이분들 글을 바탕삼아 완성된 것이다. 길게는 14분이 넘는 노래(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도 있고 불과 1분 36초짜리 노래(늙은 개)도 있다. 굴렁쇠 아이들, 가수 홍순관, 윤선애, 조경애, 방기순, 채진숙, 조월래 씨 등이 노래를 부르거나 낭송했다. 표지 그림은 이철수 선생이 맡았다.
↑↑ 양철북에서 펴낸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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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써 본지 아득하고 받아 본지는 더 먼, 구구절절 장탄식마냥 흘러가는 장강(長江)은 아니어도 낙엽 한 장쯤일 엽편편지(葉片便紙)라도 받아봤음 하는 이들에게 편지 한 장 놓아둔다.
‘선생님, 이번 겨울은 계속 추웠었지요? 저는 한 보름 동안 계속 누워 지냈습니다. 지나치게 과로한 모양입니다. 이제 조금 낫습니다. 어쩌다 보니 겨울 동안 많은 낭비를 한 것 같습니다. 무연탄도 전보다 꼭 갑절을 소비시켰으니까요. 신문 대금도 밀려 버렸습니다. 5천원만 보내 주세요. 선생님께 빚진 것 아무래도 갚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청주문학 작품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못 한 것이 아니라 보내지 않았습니다. 작품은 다른 데 지면이 있으면 보내겠습니다. 선생님도 그러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참으로 요즘은 마음이 더욱 답답합니다. 속 시원히 얘기할 곳도 없군요.
문협 안동지부에서 거창한 계획을 알려 왔지만 모두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선생님, 드릴 말씀 너무 많은데도 한 가지도 적을 수 없습니다. 안녕히!
1974년 2월 16일 권정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