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철 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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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그렇다. 사무실의 꽃 ‘봉다리 커피’도 훌륭하지만, 이제는 아주 독특하고 독립적인 커피를 찾는 이들이 많다. 체인점보다 주인장이 심혈을 기울여 골라 구매한 커피로 손님들 취향에 맞게 한 잔 권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면 주인공 천송이가 모카 라테를 마시며 문익점에게 존경심을 표시하는 대사가 나온다. “문익점 선생님이 왜 모카씨를 숨겨왔는지 알 것 같애. 문익점 선생님 땡큐” 물론 목화를 모카로 익살스럽게 비튼 말본새지만 제법 훌륭한 대사다.
오늘부터 함께 ‘산책(散策) 말고 산책(散冊)’할 첫 번째 동반자는 ‘전쟁 말고 커피’다.
예멘계 이민 2세대 청년, 목타르 알칸샬리가 고향 예멘 커피 명성과 진가를 되찾기 위해 개고생하는 이야기를 담은 고군분투기다.
커피 종주국이 어디냐를 놓고 다투는 일은 산타 고향이 어디냐를 놓고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는 일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책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는 전쟁과 커피는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 것일까? 화약 냄새보다 커피 향이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예멘이 어떤 나라인지 어디 붙어 있는지 세계지도를 들춰 찾아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 가끔 국제 뉴스에서 알카에다, ISIS, 드론 공격 이런 단어가 튀어나올 때마다 잠깐 그런 나라야? 라는 식으로 우선 기억한다. 주인공인 목타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전쟁 대신 커피로 예멘을 드높이는 게 더 빠르고 옳다고 믿고 있는 이다.
어떤 계기로 ‘모카의 수도사’ 알샤딜라를 알게 된 후 그 수도사가 예멘에서 생산되는, 그것도 모카항이 가진 특별한 지위를 깨닫는다. 즉 커피는 모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커피에는 로부스타와 아라비카 두 종류가 있다. 그중 맛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아라비카는 로마인들이 ‘아라비아 펠릭스’, 즉 ‘행복한 아라비아’라고 불렀던 곳이 바로 예멘 항구도시 모카였다. 현재 커피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커피콩을 처음 우려낸 사람은 수피교 성직자 알리 이븐 오마르 알샤딜라였다. 카화라고 불린 이 음료를 수피교도들이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가져갔고, 튀르크족이 카화를 카흐베로 바꾼 것이 커피가 됐다는 사실. 고종이 마시던 가비차가 커피였듯이.
↑↑ 전쟁 말고 커피 책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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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항을 통해 수출된 커피를 맛본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커피콩을 훔쳐다 그들 식민지에 심었고, 커피는 전 세계로 퍼졌다. 예멘 커피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00년대 중반 1년에 7만5천톤 커피를 생산했던 예멘 커피 농사는 망가졌다. 연간 생산량이 1만1천톤이었지만, 명품 품질을 갖춘 것은 4%에 불과했다. 커피 종주국 명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샌프란시스코 빈민가 건달이 될뻔한 목타르는 이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명품 커피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대량생산과 대량유통 이면에서 커피 생산자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획일화된 커피 맛에 길들여진 현실을 바꾸기로 했다.
커피 역사, 생태, 가공 및 유통과정, 커피 품질 구분 등을 철저히 공부한 뒤 예멘 커피 농가들을 일일이 찾아가 명품 커피를 구했다. 중간 유통을 없애 커피 농가에 이익이 더 가게끔 하는 한편 높은 윤리 기준을 정해 양보다 질, 정직과 투명을 기치로 예멘 커피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하지만 내전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농가를 찾아다니는 일, 수확한 커피를 창고로 옮겼다가 컨테이너에 담아 배에 싣기까지 과정은 한 편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하다. 수많은 검문, 검색, 신변 위협을 느껴야 했다. 어떤 때는 구금되기도 했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커피업계 애플이라고 불리는 블루보틀에서 첫선을 보인 모카 커피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2017년 2월 잡지 ‘커피 리뷰’는 모카항 커피 회사인 하이마 농장산 커피에 97점을 줬다. 21년 ‘커피 리뷰’ 역사상 최고점이었다. 예멘 커피 농장들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앞다퉈 모카항 커피 회사로 커피콩을 가져왔고 옛 명성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목타르도, 커피 농가도, 커피 마니아들도 다 좋아진 것이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우스개를 전설 삼아 이제 당당하게 우리도 ‘모카 커피 한 잔’이라고 주문해보자. 모카는 목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