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조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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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대답이 존재하지만, 기술경제학은 ‘기회의 창’이란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기회의 창’이란 말 그대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창이 열리는 시기가 존재하는데, 창이 열리는 시기를 잘 살린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의 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며, 언제 열리게 되는가? 기술경제학은 이에 대해 대표적으로 기술 패러다임이 변할 때, 기회의 창이 열린다고 말한다. 기술 패러다임 변화란 간단하게 말하면 해당 분야에서 기존 산업을 지배하던 기술과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이 지배적인 기술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선진국이 잘 사는 것은 선진국 기업이 해당 분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선진국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기술 수준이 매우 높으며, 후진국 기업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선진국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선진국 국민의 소득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 선진국 기업은 해당 분야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개발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 관한 기술을 많이 축적하고 있다. 반면, 후발국 기업들은 해당 분야에서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그만큼 선진국 기술에 도달하기 어렵다. 출발선이 다른 이유로 기술격차가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과거에 후진국이었던 나라들은 지금도 여전히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되며, 실제로 대부분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 축적해 놓은 기술이 필요가 없는 새로운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선진국 기업이 후발국에 비해 딱히 유리한 게 없다. 새로운 상황 하에선 선진국 기업 역시 후발국과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후발기업이 선진기업을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리게 된다.
그럼에도 후발국 기업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지배적인 기술로 등장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보면 자본 규모나 연구능력 수준에서 선진국 기업이 여전히 앞서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여전히 선진국 기업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이유가 후발국 기업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기회로 작용한다. 선진국 기업은 자본 규모가 크고, 연구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해당 기술 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과거에 단행한 투자를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기술에 투자해야 하지만, 이미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이를 정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현실에선 투자한 양이 많을수록 과거 기술에 집착해 최대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일반적이게 된다. 이처럼 기존 선발자가 신기술에 과감히 투자하기보다 과거 기술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는 현상에 대해 기술경제학은 ‘선발자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반면, 후발국 기업은 기존 기술에 투자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기존 기술을 과감히 버리고 신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결단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후발국 기업에도 이런 결단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결단을 과감하게 단행한 기업이 결과적으로 선발자를 넘어서는 도약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술경제학 연구성과에 따르면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발생했으며,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예컨대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자산업 기술지형이 변할 때, 일본 전자기업은 자신이 우위에 있던 기존 아날로그 방식에 집착하는 선발자의 함정에 빠졌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디지털기술에 과감히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에 일본기업을 넘어설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기업 역시 기화기 방식에서 전자제어식으로 엔진기술 패러다임이 변할 때, 과감하게 전자제어식 엔진기술에 투자해 선발자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선발자의 함정은 선발자가 바보라서 겪는 것이 아니라 선발자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기업 역시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 기술에 집착하는 선발자의 함정에 언제든 노출돼, 후발자의 추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한 거대한 에너지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가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거대한 에너지 기술 패러다임 변화가 크든 작든 많은 산업에서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발전산업에선 석탄발전에서 풍력이나 태양에너지 중심의 발전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으며, 자동차산업 역시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 급격한 이행이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소 느리긴 하지만 벙커C유에서 LNG를 거쳐 암모니아 혹은 수소 추진선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조선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산업이 경상남도 주력 산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경상남도가 후발자의 추격을 물리치고,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올라타야 한다. 그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