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경북이고, 경남 쪽에는 와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직장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혼자 살며 직장에 다니는 건 외로운 일이다. 퇴근해서 집에 와도 나를 기다리는 건 텅 빈 집밖에 없었다. 부산ㆍ경남 쪽엔 친구나 친척도 없어서 휴일이라 해도 밖에 나가 만날 사람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안 좋기만 한 건 없는 법인가 보다. 이 외로움이 내게 새로운 취미를 선사했고, 그 재미에 푹 빠졌다. 천성산 숲길 하이킹, 여기에 취미를 들이고부터 오히려 혼자 있는 게 좋아졌다. 혼자서 조용히 천성산 숲길을 걷다 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고민과 시름이 사라졌고, 마치 내가 이 아름다운 산의 일부가 된 것처럼 행복감이 몸에 꽉 차는 걸 느꼈다.
사람은 슬픈 일뿐만 아니라 기쁜 일도 주변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나는 천성산에 다녀올 때마다 직장 동료들에게 천성산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마치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예찬을 바치곤 한다. 내가 어느 정도로 천성산을 좋아하느냐면, 지금 사는 집 전세계약이 끝나 다음에 이사할 일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양산과 가까운 곳으로 갈까 고민할 정도다. 직장이 2호선 라인에 있음으로 양산으로 이사를 한다 해도 출ㆍ퇴근에 크게 지장은 없다.
↑↑ 가을에 찍은 계곡 모습 |
ⓒ 양산시민신문 |
2. 갈림길에서 나눠지는 매력 두 가지
천성산 입구에 주차하면 내원사로 향하는, 길 양쪽에 오래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그 옆으로 너무나 맑은 냇물이 흐르는 도로가 있다. 그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든 걸어서 가든 쭉 올라가면 그 끝에 내원사가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원사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운 보물이지만, 거기까지 이어지는 길은 여태껏 내가 본 길 중 가장 평화롭고 아름답다. 로마, 바르샤바, 피렌체, 크라쿠프, 프라하, 뮌헨 등 해외여행을 여러 번 가봤어도 이 길을 걸을 때만큼 내게 평화와 행복감을 주는 곳은 없었다. 몇 백 년은 됐음직한 커다란 나무들이 길 양 쪽에서 머리를 드리우면 그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화창한 햇살이 통과되어 초록색 빛이 일렁인다. 그 빛에 물든 채 걷는 내내 세상 어디에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계곡이 음악을 연주하듯 경쾌하게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성산 입구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가는 코스 못지않게 그 다른 쪽, 즉 노전암 방면을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맨 위의 사진은 계곡의 본격적인 시작 지점이다. 천성산은 원래 계곡으로 유명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항상 정답인 듯싶다. 그저 유명한 것과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진만으로는 실제 천성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내기 힘들다.
↑↑ 직장 동료 둘을 데리고 갔을 때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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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천성산 전도사
천성산 숲길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굳이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숲길을 따라 걸으면 되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특별한 등산화나 등산장비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가볍게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고요함과 깨끗함은 숲만이 줄 수 있는 큰 축복이다. 우리가 숲에 나무 한 그루 심은 적 없고, 가뭄에 물 한 방울 부어준 적 없어도 숲은 항상 우리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숲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누가 언제 오든 숲은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겨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