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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⑲] 인연이 인생이 되..
기획/특집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⑲] 인연이 인생이 되는 히말라야… “I Love Nepal”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8/08 09:44 수정 2017.08.08 09:44
히말라야 트레킹은
하늘이 우리를 돕고
히말라야 여신이
우리를 허락해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결과다












ⓒ 양산시민신문















 
↑↑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양산시민신문 
둔체로 내려가는 동안 만감이 교차한다. 카트만두에서 이곳까지 차를 타고 들어올 때 위기와 고생을 떠올렸다. 겨우 117km 거리의 길을 12시간 이상 걸렸으니 참으로 끔직한 여정이었다. 아찔한 급사면 산간도로에 산사태가 난 곳도 있고, 깊은 진흙탕 길에 차바퀴가 빠져 고생을 한 일을 되돌아보니 혹시 내일 나가는 길에 간밤 폭우로 산사태가 나거나 도로가 유실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가이드 리마가 둔체의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둔체에는 우리를 태워가기 위해 어젯밤 카트만두에서 짚차가 들어와 있다. 어제 그 길을 달려온 기사에게 확인하니 도로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해 마음을 놓았다. 

급경사 산길을 내리쳐 박듯이 내려오니 안개에 싸인 외딴집 롯지가 나타났다. 해발 2천625m 데우랄리(Deurali)다. 신곰파에서 고도 700m을 내려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간밤에 비를 맞은 밀림 나뭇잎들이 번들거린다. 장대한 원시림이 다시 이어지고 길은 완만한 내림이다. 계곡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속세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스친다. 

한참을 내려가는가 싶더니 절벽을 깎아낸 길이 나타났다. 절벽길을 내려오니 가테콜라(Ghattekhola, 1천960m) 계곡 거센 물살이 허옇게 몸을 뒤집으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강안을 따라 한 구비 돌아서니 외딴집 하나가 또 나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집 앞 처마 밑에서 카메라를 배낭에 챙겨 넣으며 보았다. 


다섯명 아이들이 얼굴을 내민 채 까만 눈망울로 이방(異邦)의 길손을 바라본다. 연년생인 듯한 5남매 아이들은 모두 까무잡잡한 얼굴이지만 눈이 깊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을 보니 인도계 종족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잘 생긴 얼굴이었다. 주머니에서 홍삼캔디를 집어서 나눠줬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고 순진무구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고행의 순간을 이겨내며 내려오니 얼마가지 않아 찻길이 나왔다. 둔체로 들어가는 길목에 한국 기업인이 운영하는 생수공장(Himalaya Spring Water)이 있다. 공장에는 태극기와 네팔 국기 그리고 회사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간오지에서 태극기를 보니 감회가 새로워지고 애국심이 발동하는 듯했다. 

오전 8시가 못 돼 둔체(Dunche, 1천950m)에 도착했다. 신곰파를 출행한 지 3시간 여, 해발고도 1천380m를 내려온 것이다. 아아, 이제 도보로 걷는 10일의 히말라야 트레킹 여정은 모두 끝났다. 고소의 고통이 늘 함께해 몸이 무겁고 일거수일투족마저 힘들었지만 무사히 하산하게 돼 깊은 안도(安堵)의 숨을 쉬었다. 우리 무거운 짐을 지고 고행한 네팔 친구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전했다. 무엇보다도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늘이 우리를 돕고 히말라야 여신이 우리를 허락해 이뤄낸 결과였다. 서로 감격의 악수를 나눴다. 

둔체를 출발했다. 카트만두로 가는 길, 솔레(Sole)에서 람체(Ramche)에 이르는 문제의 산간도로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비록 일방통행 진흙길이 파이고 질척거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어도 걱정하던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람체(Ramche)를 지나고 나서는 길이 온전한 2차선 아스팔트 도로였다. 스와라(Swara) 마을을 지나고 나면 고도가 엄청나게 낮춰져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길에 차창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이 시원했다. 


연도의 집들은 대부분 도로를 향해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계곡 건너편 3천m 이상 가파른 고산 산기슭에 펼쳐지는 다랑이밭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집들을 바라보며 저 위태로운 산록에도 엄연한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며 문득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막연하고 아득한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

저녁 7시, 아시안트레킹 사장인 툭텐(Tukten Serpa) 사저(私邸)에 초대받았다. 회사에서 미니버스를 보내와 타고 갔다. 여행사 고객을 사장이 자기 집에 초대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툭텐 사장은 우리 일행들을 모두 흔연(欣然)히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특텐은 시원하게 냉장된 네팔 맥주 ‘EVEREST’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수 따라주며 환영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담소를 나누며 친교 시간을 가졌다. 














ⓒ 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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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벽에는 만년의 힐러리(E.Hillary)가 툭텐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Everest) 정상을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 생전 툭텐과는 부자(父子) 인연을 맺고 각별하게 지냈다고 한다. 힐러리 경이 네팔에 오면 항상 툭텐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 네팔은 몬순(6~8월 우림지역 긴 장마기간)이 막 끝나가는 무렵, 3~4천m 고지 산장에는 밤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밤새 쏟아졌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씻은 듯이 원색 하늘이 열리고 순도 100%를 자랑하듯 눈부신 햇살이 얼굴을 찔렀다. 

그동안 날이 새면 걷고, 밤이면 한 마리 누에처럼 침낭 속에 들어가 선잠을 잤다. 히말라야는 ‘큰 산이 큰 산을 품고 온 산이 온 산을 업고’ 첩첩이 이어지면서, 네팔과 티벳 경계를 이루는 장엄한 설산거봉의 장관이 파노라마(panorama)처럼 펼쳐진다. 



가까이는 앞뒤를 가로 막는 거대한 산들이 압도하는 곳, 청산거봉이 하늘을 우러르고 설산예봉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곳, 그리고 산이 하얀 구름으로 무심히 얼굴을 가리기 시작하면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곳. 밀림의 찰거머리(쥬가)가 날아드는 천년 원시림 속을 강행하는 여정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무수히 많은 걸음을 히말라야에서 옮겨야 했다. 뜨거운 땀방울, 거친 숨결로 내딛어야 하는 발걸음의 연속이었다.

강진곰파(Gangjincompa)에서도 그랬지만 고사인쿤도를 오르는 초랑파티에서부터 하늘 가까운 해발 3천m 이상 고지에서 운명처럼 만나는 고산병은 머리가 띵하게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턱에 차올라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처럼 무거웠던 길 내내 함께 한 동반자다. 마치 히말라야에 들어선 인간에게 신이 내려준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하늘과 자연이 내리는 본연의 생명을 깨닫고 온몸을 휘감고 도는 알 수 없는 황홀감에 빠져 하루하루 목숨이 은혜로운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세상 오지를 헤매다 돌아온 자의 마음에 차 오르는 것은 ‘눈물겹도록 아픈 사랑’이어라.

“당신은 왜 산을 오르는가?(Why do you climd the mountain?)”라는 기자 질문에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던 조지 말로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Because it is there)”이라고 말했다. 

산(山)으로 대표되는 대자연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순수함 그 자체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저절로 그렇게 됐고 저절로 그렇게 돼 감으로써 자연의 순환적 원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것이다. 육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연은 사람 마음 속에 내재한 아름다운 성정을 살려내 참다운 삶을 살게 한다. 그러므로 말로리가 말한 ‘거기’에는 바로 하늘의 뜻이 대지의 순수한 생명으로 숨쉬고 있다. 


‘거기’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선 겸허해야 하고 ‘거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산의 정기가 맑은 영혼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예로부터 산은 속세를 떠난 고요함 속에서 수행을 하거나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 목소리를 통해 자신과 주변 환경의 세계를 연결하려 했던 선각자들이 찾는 곳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경건한 의식이다. 

멀고 먼 나라 네팔 오지(奧地) 히말라야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녀왔다. 사실은 20년 넘게 매년 원정이나 여행을 다녔다. ‘사서 한 고생’이었지만 영혼은 충만한 그 무엇으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고행의 땀방울을 통해 생명을 자각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충전한 셈이다. 산이 거기 있어서 누릴 수 있는 청정한 행복이었다. 

2015년 4월 25일 11시 56분 규모 7, 8의 대지진이 네팔 전역을 강타했다. 랑탕 지역은 650명이 사망하고 106명이 실종상태다. 네팔 지진돕기는 지원보다는 네팔로 여행이나 원정을 가 주는 것이 그들을 돕는 일이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라고 한 주철환 교수는 다 지나간다는 얘기로 “내리 쬐는 햇살, 떨어지는 빗물 비껴부는 바람, 부심히 떠도는 구름, 새벽 안개, 아침이슬 무지개도 다 지나간다. 다 떠나간다”고 했다. 네팔 사람들의 고통이 얼른 지나가기를 희망한다.

바이런의 시를 또 옮겨본다. “폭풍이 지나간 들에도 꽃은 피고,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는다”고…. 우리 모두 사랑과 관심으로 네팔여행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 싶다. 나에겐 네팔이 제2의 고향이다. 히말라야 배낭여행은 자신을 잠시 돌아보게 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충전의 기회다.

“I Love Nepal”

>>그동안 이상배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 이야기를 함께 한 모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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