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는 어디를 보아도 첩첩거산(疊疊巨山)이다. 큰 산들이 큰 산을 품고, 온 산들이 다시 온 산을 업고서, 수천만년을 침묵의 언어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는 온통 산과 산들이 시공을 채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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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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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 동안 몸을 추스르고 밖에 나오니 비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구름도 거의 사라졌다.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거목 사이로 멀리 장엄한 설산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랑탕리룽(Langtang Lirung, 7천227m)이었다. 랑탕리룽은 강진곰파 마을 뒤에 솟은 거봉인데, 그곳에 머무는 3일 동안 구름에 가려 설봉의 위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초랑파티 밤은 특별했다. 밤새 폭우가 롯지 지붕을 두들겨 패는데도 미리 불안해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지인들과 네팔송을 함께 부르며 망각의 시간을 보냈다. 밤이면 시도 때도 없이 엄청나게 비가 내리고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히말라야, 참으로 천기가 변화무쌍이다. 그러나 고산을 오르는 길손에게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히말라야는 하늘이 도와야 건강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초랑파티에서 일찍 아침식사를 끝내고 서둘렀다. 랑탕 히말라야 설산 파노라마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평소보다 한 시간 빨리 트레킹을 시작했다. 오늘 같은 날은 히말라야 장엄한 풍경을 관망하기가 좋은 화창한 날이라 구름이 산을 가리기 전 서둘러 전망이 좋은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늘에 엷은 새털구름이 간간히 떠 있기는 했지만 공기가 매우 청명한 하늘이다. 파란 하늘에서 맑은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 초랑파티를 출발해 고사인쿤도를 향해 산을 오르는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시야도 확 트이고 완만한 경사라 간만에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어디를 보아도 첩첩거산(疊疊巨山)이다. 큰 산들이 큰 산을 품고, 온 산들이 다시 온 산을 업고서, 수천만 년을 이렇게 침묵의 언어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는 온통 산과 산들이 시공을 채우고 있다.
히말라야 산세가 보여주는 대자연의 장엄경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관목지대를 지나니 길은 다시 완만한 경사의 초원(草原)지대로 이어진다. 고소(高所)의 괴로움을 견디며 한 발 한 발 산길을 오른다. 정말 순례자의 길이다. 그렇게 묵묵히 걸었다.
카메라에 파노라마버전으로 설산의 연봉을 담고 나서 말했다.
“저 선명한 풍경도 얼마 가지 않습니다. 히말라야 날씨는 변화무쌍합니다. 여기 하늘은 멀쩡해도 저기는 금방 구름이 몰려와 저 멋진 풍경을 가려버리니까요. 그래서 아침 일찍 서둘러 산을 올랐던 겁니다”
우리 일행들은 한참 동안 장대한 설산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황홀경에 취했다. 랑탕 계곡 트레킹을 ‘파노라마 트레킹(panorama trekking)’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달구지 같은 여행 내내 히말라야 설산(雪山)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장엄한 풍경에 수시로 감동하고 흥분했다. 다시 오르고 내리며 둘레길로 이어진다. 광활한 초원으로 이어진 산길은 완만하지만 크고 작은 고산증으로 일행 간 간격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 랑탕 트레킹 도중 만날 수 있는 들꽃 하나, 이정표 하나 모든 것이 감사하다. 고된 산행 피로를 잊게해 주는 롯지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 번 ‘감사하다’, ‘감사하다’ 속으로 되뇌인다. 히말라야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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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행장을 수습해 산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롯지 몇 채가 있는 라우레비나 윗마을을 경유해 초원을 가로질러 오르는 길이다. 나도 모르게 ‘옴마니반메홈’과 ‘움아훔고즈라 벤메시티홈’이라는 경전 한 토막을 염송했다. 순간 힘들어도 속세의 찌든 때가 다 벗겨지는 것 같다. 답답한 가슴을 다스리며 걸어 올라가는 고사인쿤도로 가는 길은 속세를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순례길이였다. 히말라야 이정표는 하나같이 ‘고도(高度, Altitude)’를 표시한다. 한국 이정표가 거리(距離)를 표시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고도(高度)가 중요한 것은 바로 고소증(高所症) 때문이다.
이제 고도 4천m를 넘어간다. 힘겨운 고행과 수행의 연속이다. 길목에 미소 짓는 갖가지 꽃들을 바라보며 새삼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내 존재의 숨결을 확인하는 순례길이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신(神)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고소증(高所症)은 인간이 신(神)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通過儀禮, Initi ation)가 아닐까 싶다.
높은 고지에 올라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갈망하며 기도한 시인은 윤동주(尹東柱)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日帝)라는 질곡(桎梏)의 시대에 조용히 피었다가 외롭게 진 한 송이 들꽃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동주 시인 본가와 그의 묘소까지 참배하고 온 사람이다. 그만큼 윤동주 시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 들꽃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운 청년이다. 오늘 내 뜨거운 숨을 헐떡이며, 겸허한 마음으로 동주의 하늘에 다가가서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序詩)’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같은 아주 사소한 양심의 떨림도 허용하지 않았던 청렬(淸冽)한 영혼의 소유자였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청년이었다. 그러므로 세상 어느 것 하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다. 비록 ‘별’(순수한 사랑)이 ‘바람’(고난의 현실)에 스치울지라도 결단코 좌절하지 않는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준열(峻烈)한 자기 다짐만 있을 뿐이다.
감히 시인의 그 열절한 정신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생명의 은혜로움과 삶의 부끄러움을 아프게 통찰한다. 이 높은 고도의 산 위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은 발 아래로 멀어져가고 나의 열망은 절대 가치로 존재하는 하늘 앞에 서 있다.
>>랑탕 히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