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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16] 자연과 사람을 몸으로 체득..
기획/특집

[네팔ㆍ히말라야 배낭여행16] 자연과 사람을 몸으로 체득하는 히말라야의 시간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06/20 09:33 수정 2017.06.20 09:33
랑탕 히말 여섯번째 이야기














↑↑ 2천210m 고지 마을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양산시민신문 
얼마를 갔을까? 그렇게 오르다 보니 시야가 탁 트인 높은 산록에 올라섰다. 고도가 높은 산록에는 외딴집 한 채가 덩그러니 올라앉아 있다. 가파른 산중턱 공간이지만 마당까지 갖추고 있었다. 작은 집인데 길손을 위한 구멍가게가 있고, 마당에는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가 있어, 우리 일행들은 모두 고단한 육신을 내려놓고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봉당에 나와 앉은 중년 네팔 부부와 어린 아이 세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 높은 산록(山麓)을 바라보니, 여러 채 집이 있는 출루샤부르 모습이 지척에 올려다 보였다. 갈 길이 바로 앞인데도 마음은 천리 같다. 이곳과 출루샤브루 사이에는 아주 깊은 계곡이 있어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 현수교를 건너 올라가야 한다. 우회(迂回)해 가는 산길은 길었고, 현수교(懸垂橋)를 지나야 하는 계곡은 깊었다. 계곡 물이 흘러내려 거대한 폭포를 이루는 도만(Doman)에서 랑탕 계곡 물줄기와 합류한다. 출루샤브루는 샤브루베시에서 성지(聖地) 고사인쿤도로 올라가는 중간 거점, 고산 마을이다. 


아득하게 높은 곳, 비스듬하게 경사를 이룬 산등성이에 많은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3~4층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들도 몇 채 눈에 들어왔다. 동네 가장 아래쪽 하얀 건물 곰파에는 타르쵸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온 산록 이곳저곳 한두 채, 또는 외딴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마을 주위에는 산비탈을 개간한 다랑이밭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고산 원주민들은 다랑이밭에 옥수수와 감자를 경작하며 살고 있다. 출루샤브루는 고사인쿤도를 찾는 사람들이 유숙할 수 있는 롯지가 마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출루샤브루에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다. 그 가운데 4층으로 된 분홍색으로 도색한 콘크리트 집이 우리가 유숙할 게스트하우스다.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세련된 건물이다. 이제 마지막 안간힘을 짜내 숙소를 향해 산길을 오르고 마을에 들어가서도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숙소는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은 히말라야 3브라더스 게스트하우스. 



방은 넓고 깨끗한 데다 와이파이, 인터넷 서비스까지 갖추고 있다. 산비탈에 지은 세련된 건물에는 샤워장도 두 군데나 있고 넓은 공간의 식당도 마련돼 있었다. 마을에는 학교도 있어 인근 고산 마을 아이들도 이곳 학교까지 와서 공부한다. 2천210m 고지 출루샤부루, 이런 산중에 어떻게 이 많은 건축자재를 옮겨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햇살의 정령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출루샤브루 아침은 상쾌하고 유쾌했다. 오늘은 출루샤브루(Thulu Syablu, 2천210m)에서 초랑파티(Chorangpati, 3천584m) 롯지까지 1천400m 고도를 올라야 하는 여정이다. 고사인쿤도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줄기를 따라 계속 올라가는 산길이다. 아침식사는 어제 먹다 남은 닭국물에 밥을 말아 간단하게 먹었다.


산은 처음부터 오름길 연속이다. 동네를 벗어나자 하얀 스투파(Stupa)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고 오색 타르쵸(Tarcho)가 펄럭이고 있다. 그 옆 길목 검문소에 서 있던 군인 하나가 인사를 건넨다. “나마스테” 산비탈을 타고 오르는 산길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별로 없어 따가운 햇살을 그대로 받아야만 했다. 


얼마를 올랐을까? 시야가 환하게 열리는 언덕에 올라서니 맑은 시공 너머로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저 멀리 북쪽 거대한 첩첩 산 사이에 눈부신 설산고봉(雪山高峰)인 가네쉬히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서 있다. 


가네쉬(Ghaneshi)는 힌두교 3대 신(神) 중 하나인 시바(Shiba) 신과 배우자 빠르와띠(Pavati) 사이에 난 아들로 힌두교 영향을 받아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첩첩청산과 파란 하늘 사이 수줍은 듯 하얀 머리를 쳐든 설산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산길에서 만난 히말라야 아이들
















↑↑ 트레킹 도중 만난 네팔 젊은이들, 언제나 환한 얼굴로 이방인을 맞아준다.
ⓒ 양산시민신문

길은 다랑이밭 둑을 걷기도 하고, 돌담을 따라가기도 하고 산록 외딴집을 스치기도 한다. 밭이 아닌 산기슭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묵정밭이거나 모두 고산 초지(草地)다. 돌아보니 랑탕 계곡 건너 거대한 산이 시야를 채우고 발아래에는 출루샤부루 마을 정경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산길을 걷다보니 아이 둘이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나마스테!!”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 보았다. 물어보니 두 아이는 남매인데 남자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머리 뒤쪽에 빨간 꽃 장식을 한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둘 다 똑같이 감색 털 셔츠에 회색 바지와 치마를 받쳐 입었다. 교복을 차려 입고 출루샤부루에 있는 학교에 가는 길이다. 



네팔 고산지대 산중 아이들은 해발 1천m를 오르내리며 인근 학교에 다니고 있다. 주머니에서 홍삼캔디를 한 웅큼 집어 줬더니 까만 얼굴에 수줍은 듯 웃음을 띠며 가는 목소리로 “단내밧!” 한다. ‘감사하다’는 네팔 말이다. 그리고 남매는 좋아라 희희낙락하며 산을 내려가고, 길손은 그들이 내려온 길을 힘겹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슴에 차오르는 뜨거운 숨을 고르며 묵묵히 묵묵히 걸을 뿐이다. 올라가지 않으면 다다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히 걷는 것만이 유일하고 바른 길이다. 


원래 트레킹(Trekking)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소달구지 여행’이다. 소처럼 묵묵히 걷는 자의 사유(思惟), 온몸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곡진한 의식(儀式)이다. 몸은 무겁고 발걸음은 더디지만, 마음은 유유한 하늘의 구름처럼 평화스럽다. 자연의 생명을 몸으로 체득하는 배낭여행이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文明)은 단적으로 말하면 속도의 삶이다. 조금이라도 빨라야 다른 사람을 앞서고 그렇게 해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늘 서두르고 조급하게 쫓고 쫓기는 문명(文明)에 길들여져 있다. 자연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에 자기 발목을 매고 늘 바쁘게 질주한다. 



풍요로운 물질과 편리성을 추구하면서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서두르거나 조급하면 고소(高所)에서 견딜 수가 없다. 지나치면 목숨까지 잃는다. 모든 것을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히말라야는 자연을 통해 우리 인생에 있어 소중한 생명의 본성을 일깨우고, 또 ‘느림의 미학’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깨닫게 해준다.


마을 뒤 초원지대를 지나자 서서히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구름을 동반하고 몰려오는 게 아닌가. 돌아보니 랑탕 계곡 건너편은 환하게 햇살을 받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산길 주위는 관목들이 주로 있는데 랄리구라스 나무가 눈에 많이 띄었다. 랄리구라스는 네팔 국화(國花)로 진분홍색 꽃이 무더기로 피는데 주로 3~5월에 만개한다. 



고도를 높이자 산길이 장대한 나무들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짙은 안개가 금방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울창한 원시림 속으로 몰려든다. 온 산 수림들이 운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해 발목을 살펴보았더니 피가 철철 흐르고 있지 않는가. 며칠 전 우리 일행이 당했다는 히말라야 숲속 찰거머리가 내 발목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쥬가’라는 찰거머리는 3~4cm 정도로 가느다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언제 몸에 달라붙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렵거나 아프거나 전혀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일단 놈이 살을 파고들면 피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피가 그칠 줄 모른다. 피를 잔뜩 먹고 나면 놈의 몸통이 5~6cm로 퉁퉁 불어난다.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 찰거머리를 처음으로 만나 피를 나눴다. 히말라야 여행에서 당하는 또 다른 이색체험이라 위안을 삼았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밀림 속에서 급격하게 고도를 높여가는 숨 막히는 산길이 계속됐다. 온몸이 뜨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다리는 무거워만 갔다. 


오후 3시경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초랑파티(Cholangpati, 3천584m)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 트레킹을 마친 것이다. 발아래 거대한 밀림은 아직 뿌연 안개에 휩싸여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랑탕 히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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