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마르파는 유럽 시골마을처럼 호젓하고 깨끗한 풍경을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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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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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마낭까지 별 무리 없이 걸었다. 마낭은 해발 3천540m 산중마을이다. 차메처럼 마을 규모가 큰데, 인터넷카페, 빵집,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하지만 마낭이 트레커들에게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앞으로 전개될 고산 트레킹을 이곳에서 충분히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지고 간 측정기로 산소포화도(spo2)와 맥박을 일일이 측정했다. 모두 정상 수치였다.
실제로 다음 숙박지인 야크카르카(4천30m)까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야크카르카에 앞서 텐기마을을 지났다. 텐기마을은 마낭에서 30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마을에서 잠시 뒤를 돌아다보니 마나슬루가 여전히 손짓하고 있었다.
↑↑ 베시사하르에서 네니까지 총 231.8km 가운데 도보 구간인 참제~파르파 구간 131.2km를 걸은 끝에 마르파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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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때문에 걸음이 자꾸 지체됐다
야크카르카는 생각보다 추웠다. 기온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텐트가 여럿 있었다. 롯지 대신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텐트트레커들이다. 4천m를 넘어서니 일행들도 조금씩 걱정이 앞서는 듯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자신 한계를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도 야크카르카부터 초롱페디(4천450m)까지는 오르막이 비교적 완만했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정면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히말라야 찬바람 때문에 발걸음이 자꾸 더뎌졌다. 힘들지만 히말라야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아주 황홀한 순간이다.
수목한계선과 급경사 비탈(Land slide) 구간을 지난 뒤 모퉁이를 돌아 올라서니 초롱페디가 시야에 들어왔다. 초롱페디는 얼마 전 큰 불이 나 숙소 사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도 겨우 방을 구했다. 휴식을 취하는데 몇몇 참가자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고도가 4천450m에 이르니 호흡이 힘들어진 것이다. 가져간 고산증 예방약과 코넓힘 밴드를 미리 나눠주고 새벽 3시 출발과 동시에 복용하라고 알렸다. 다행히 초롱패스를 넘겠다는 의지가 다들 넘쳤다.
하이캠프 롯지 안은 초롱패스를 넘겠다는 트레커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도 따끈한 차를 주문했다. 그 사이에 먼동이 서서히 밝아왔다. 막상 롯지를 나서니 음산하고 추웠다. “비스타리”를 외치며 걸음을 뗐다. 비스타리는 네팔어로 ‘천천히’를 뜻한다. 어지간히 올랐다고 생각하고 고도시계를 쳐다보니 아직 해발 5천100m를 가리키고 있다. 300m를 더 올라야 한다. 새벽엔 찬 공기가 힘들게 하더니 이제는 뜨거운 기온 때문에 얼굴 들기가 힘들다. 하얀 눈 사면에 주변 햇빛이 반사돼 더 뜨거웠다. 모두 침묵 속에 무거운 발걸음을 하나씩 옮겼다. 초롱패스는 그렇게 ‘천천히’ 다가왔다.
초롱패스(5천416m)에 올랐을 때에는 오후 1시가 훌쩍 지났다. 초롱패스 입간판이 눈에 뒤덮여 끝부분만 겨우 보였다. 사람들 소원을 담은 타르초 깃발이 넝쿨처럼 나부꼈다. 발아래 안나푸르나 산군이 펼쳐졌다. 세상이 두 가지 색 뿐이다. 하얀 눈과 푸른 하늘.
초롱패스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묵티나트(3천700m)로 내려가는데 눈 때문에 길이 위험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중 기원섭 씨가 발목을 다쳤다. 늦은 오후가 되니 바람이 강해지고 눈발도 날렸다. 마일라가 부축을 하고 내려가는데 많이 힘들어 했다. 묵티나트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어두워졌다. 저녁 내내 퍼붓던 비는 새벽에 폭설로 둔갑했다. 이것 또한 히말라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히말리야 산중마을인 묵티나트는 불교와 힌두교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묵티나트는 네팔어로 ‘영원히 타오르는 불’을 뜻한다. 늘 네팔이나 인도에서 찾아온 많은 신도들로 붐벼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도 한참을 헤매다 겨우 숙소를 마련했다. 숙소에서 잠시 쉰 뒤 곧바로 힌두사원 성지를 방문했다.
길에는 허접한 기념품과 생필품을 바닥에 깔아 놓고 여행자들을 호객하는 주민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다시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를 극복하고 만족을 느끼다
카그베니에서 좀솜(2천710m)까지도 길은 쉽지 않았다. 칼리간다키 강바닥을 타고 걸었는데 강바람이 생각보다 훨씬 더 거셌다. 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강 왼쪽으로 릴기리 봉과 틸리초피크 봉이 따라왔다. 경이롭고 장엄했다. 대자연 일부로 이들 산과 함께 걷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빛과 어둠 사이 긴장에 우주의 힘이 있으며 설산(雪山)은 바다나 하늘 이상으로 자신의 참 존재를 밝혀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신(神)의 산으로 떠난 여행’에서 피터 매티슨(Peter Matthiessen)은 얘기했다.
사과의 고장 좀솜에서는 포카라로 가는 경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경비행기를 타면 포카라까지 20여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는 좀솜에서 머무르지 않고 마르파(2천670m)까지 이동했다. 좀솜보다 마르파에 있는 숙소가 훨씬 깨끗하기 때문이다. 마르파는 유럽의 시골마을처럼 호젓하고 깨끗했다.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란 뜻의 마르파란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히말라야 서쪽에 위치한 다울라기리(8천167m)로 올라가는 등반가들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곳이 본격 등반을 앞둔 마지막 마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전체 트레킹 일정 종지부를 찍었다. 베시사하르에서 베니까지 총 231.8㎞ 중 도보 구간인 131.2㎞(참제∼마르파)를 마무리한 것이다.
>>다음은 랑탕히말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