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시작하기 앞서 많은 트래커들이 고소순응을 하기 위해 머무르는 남체바자르 전경. |
ⓒ 양산시민신문 |
남체(3천440m)에서 고소를 당하다
안나푸르나 산군이 구룽족 본거지라면 쿰부히말라야는 셰르파족 홈타운이다. 팍딩에서 첫날밤을 보낸 트래커들은 다음날 셰르파 고향인 남체바자르(3천440m)까지 올라야 한다. 중간에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다. 고도를 무려 600m나 끌어올리고 고소를 느끼는 3천m를 넘어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거리도 10.5㎞에 달한다. 도중에 몬죠(2천840m)에 들러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팍딩에서 몬죠까지는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사가르마타국립공원관리소 바로 직전까지 올라간다. 참고로 사가르마타는 에베레스트의 네팔어다.
몬죠 카일라스롯지에서 점심은 네팔 전통음식인 달밧으로 주문했다. 달밧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하는데 이런 행위는 위생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 크다. 손을 씻으러 갈 때 자신 수건을 가져가는 편이 좋다.
혹 밥 양이 너무 많다고 생각 든다면 식사하기 전에 미리 덜어 내야 한다. 이미 입을 댄 음식은 주토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마음에 네팔의 향기를 품는 의식 같은 점심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무 탈 없이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트래커의 3원칙이라는 말을 일행에게 들려줬다. 일부는 웃고, 일부는 무의미하게 받아넘겼다.
사가르마타국립공원관리소에서 TIMS(Trekkers’imformation management system) 카드로 입산 신고를 마치고 흔들다리를 하나 더 건너 조르살레(2천740m)에서 차를 한 잔 했다. 남체바자르까지 더 이상 롯지(Lodge)가 없기 때문이다. 조르살레를 지나서 계곡을 걷다가 다시 비탈길 오르막을 올라서면 쿰부골짜기에서 가장 높은 출렁다리를 만난다.
이곳은 두드코시와 보테코시가 만나는 계곡 합류점이다. 남체바자르 가는 길은 지그재그 오르막으로 에베레스트로 가는 트래커들에겐 처음 접해보는 고행의 길이다. 지그재그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야 하며, 도중에 야크와 물소의 교배종인 ‘좁교’라는 가축을 만날 수도 있다. 이때 계곡 쪽으로 몸을 피하면 자칫 큰일을 당할 수 있으니 반드시 산 쪽으로 붙어야 한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주변은 소나무와 참죽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숲길은 힘들지만 천천히 걸으면 제법 걸을 만하다.
팍딩에서 출발한지 7시간 만에 남체바자르에 도착했다. 남체바자르는 300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서 산간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요새 같은 도시다. 쿰부 골짜기에 있는 유일한 상업도시기도 하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체링이 운영하는 잠링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시설이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넓고 깨끗하고 인터넷 등 현대적 설비를 갖춘 전망 좋은 게스트하우스다. 숙소에 도착하자 모두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루클라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팍딩에 머무르지 말고 좀 더 걸어서 몬죠에서 숙박을 하면 다음날 남체바자르 오르는 길이 훨씬 수월해진다. 그런데 우린 팍딩에서부터 올라왔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 에베레스트로 가기 위해 입산신고를 해야하는 사가르마타국립공원관리소 전경. ‘사가르마타’는 에베레스트를 일컫는 네팔어다. |
ⓒ 양산시민신문 |
일행과 선택한 것은 남체바자르∼샹보체∼굼중∼캉주마∼남체바자르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인데, 3천500∼3천800m 고도에서 4∼5시간가량 오르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소에 순응하게 된다. 주변 콩데(6천186m), 캉데카(6천685m), 탐세르쿠(6천608m)를 오를 때에도 이곳에서 고소적응 훈련을 갖는다.
우리도 남체바자르에서 샹보체(3천720m)로 향했다. 샹보체에서 에베레스트뷰호텔로 가는 능선에 올라서니 제일 먼저 ‘어머니의 보석상자’로 불리는 아마다블람(6천856m)이 골짜기 건너편에서 햇빛을 반사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아마다블람은 지난 2004년 경남지역 젊은이들과 함께 한 동계 등반 때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감회가 새로웠다.
여행하면 ‘피곤’과 ‘자랑’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참에 자랑삼아 일행들에게 떠들었다. 메라피크(6천356m), 아마다블람(6천856m), 아일랜드피크(6천194m), 로체(8천516m) 그리고 에베레스트(8천850m)까지 눈에 들어오는 설산은 거의 다 올랐다고 하니 믿지 않는다. 여전히 믿지 못하는 일행들에게 사람 마음에 3대 악(惡)이 있는데 의심, 근심, 욕심이라고 말해줬다.
굼중으로 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아마다블람(6천856m)부터 에베레스트(8천848m)와 로체(8천516m), 눕체(7천861m)를 잇따라 조망할 수 있었다. 날씨까지 쾌청해 시야가 더 넓어진 것은 큰 행운이었다. 굼중은 가이드를 맡은 삼두 셰르파와 마일라가 사는 곳이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세운 학교도 이곳에 있다.
눈이 부시도록 설산 감상을 하면서 고소도 잊은 채 쿰부 골짜기에서 제일 큰 동네 굼중으로 내려섰다. 내친 김에 마일라 집에 잠시 들러 요기를 하고 굼중 동네 뒤편에 있는 오래된 곰파에 들렀다.
이 곰파에는 히말라야 설인 예티(Yeti)의 머리털이 보존돼 있다고 해서 가본 것이다. 1951년 에베레스트에서 예티 발자국을 처음으로 카메라에 선명하게 담아왔을 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이 동물의 존재를 믿게 됐다.
여전히 95%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시프턴의 사진이나 주요 단서들을 보면 과학계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동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유리상자 속에 보관한 예티의 머리털을 한참동안 뚫어지게 보고 나왔다. 사실 이 곰파를 지키고 있는 나이가 지그시든 사람은 삼두 아버지였다.
↑↑ 남체바자르로 가기 직전 만나는 현수교는 영화 ‘히말라야’에서도 나오는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두드코시와 보테코시가 만나는 계곡 합류점으로 에베레스트로 가는 트래커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고행의 길이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 양산시민신문 |
이 코스를 돌고나니 동행한 트래커들도 그런대로 고소에 순응한 듯 보였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 마음에 3대 악(惡)이 있는데 의심, 근심, 욕심이다. 남체바자르에서 이틀을 보내고 나니 이제 마음의 3대 악이 업장소멸 하듯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셰르파(Sherpa)는 네팔 동부 히말라야 산 속에 살고 있는 티벳계 종족이다. 라마교를 신봉하며 농업, 목축업, 상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히말라야 등반대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더 잘 알려졌다.
이 셰르파는 네팔어로 ‘동쪽 사람들’을 뜻한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가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에 오르는 것을 허락한 사람이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였는데, 노르게이가 바로 셰르파였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힐러리가 주도했지만 노르게이 도움이 없었다면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역사는 쓰일 수 없었을 것이다.
셰르파족은 이름이 비슷하다. 그 이유는 성이 모두 같고 이름은 태어난 요일에 맞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 태어나면 다와 셰르파, 화요일에 출생했다면 밍마 셰르파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수요일에 태어난 셰르파는 락파, 목요일은 푸르바, 금요일은 파상, 토요일은 펨바, 일요일은 니마로 불린다.
남체바자르에 도착했을 때는 금요일이었다.
매주 한 차례 서는 장이 토요일이었지만 전날 부족한 물자를 현지에서 다행히 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남체바자르는 쿰부 골짜기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한다. 장이 서면 인근 타메나 타모, 굼중, 팡보체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이날이 되면 우리 5일장처럼 떠들썩해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볼 수 있다.
>>쿰부히말 다음 이야기로 계속됩니다.
↑↑ 이상배 알피니스트 (사)영남등산문화센터 이사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세계5대륙 최고봉 등정 | |
ⓒ 양산시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