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나거나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평범한 이웃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혹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는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 성공과 좌절이 있다. 우리 모두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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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은 정리해고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문을 닫는 거리의 상점도 늘어만 갔다.
결혼 후 전업 주부로 살면서 사회생활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40대 초반의 한 여성의 인생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로부터 15년, 50대 중반이 된 여인은 시장에서 가장 활달한 생선가게 주인이 됐다. 지나가는 손님은 무조건 ‘언니’나 ‘삼촌’이라고 부르는 싹싹한 성격의 소유자는 바로 덕계종합상설시장 ‘성우생선’의 정영남(56) 씨다.
잘 나가던 피자가게 사모님, IMF로 한순간에 모든 것 잃어
정 씨의 남편은 포항에서 큰 피자가게를 했다. 생활에 여유도 있었다. 50평이 넘는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느닷없이 불어 닥친 IMF의 광풍 앞에 피자가게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마디로 빈털터리가 됐다. 속된 말로 쪽박을 차고 나니 포항에 있기가 싫어졌다. 하루 빨리 떠나고 싶었다. 포항을 벗어나고 싶어 워낙 서두르다보니 아끼던 가구를 이삿짐 트럭에 싣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내려왔다. 악몽 같았던 일을 겪은 포항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형산강 다리를 넘어오면서 만세를 불렀다.
덕계상설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양산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왔다가 마침 시장에 가게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선가게였다. 거제도에서 태어났고, 시집도 섬으로 갔기 때문에 생선을 손질하는 것은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생선가게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서투른 솜씨로 생선을 다듬고, 포를 뜨면서 정 씨의 악착같은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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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가게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처음 이틀은 계속 울기만 했다. 신세에 대한 한탄과 몸의 고단함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다. 비린내가 몸이며 옷에 배였지만 생선가게를 한다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안 해봤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인 정 씨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손님이 오니까 계속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사 수완이 좋아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시작부터 장사가 잘 됐다. 당시에는 경기가 좋았고, 생선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니었다. 자연히 찾는 사람이 많았다.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시장 통로가 가득 차서 못 다닐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일이 익숙해진 이후에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오후 9시쯤 집에 들어가는 고된 생활이 반복됐지만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다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들 공부도 시키고, 먹고 살만큼 벌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장사가 조금씩 안 되기 시작했다. 정 씨의 생선가게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이 모두 어려워졌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더 어려움이 더해졌다.
하지만 정 씨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좋은 물건을 제값에 팔면 손님들이 알아주리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물건은 남편이 직접 가져온다. 자갈치나 통영, 삼천포는 물론이고 좋은 생선을 구하기 위해 전남 신안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전통시장이지만 배달도 한다.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생선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책도 보고 인터넷도 보면서 생선의 특징에 대해 공부하고, 손님들에게 생선을 팔면서 이것저것 설명도 해준다. 전문가가 다 됐다.
활발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정 씨의 가장 큰 무기는 친절함이다. 정 씨는 시장에서 ‘싸움 일등’이라고 불린다.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고 손님을 대하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이 결국 강함을 이기는 이치다. 지금껏 한 번도 손님과 언성 높여 싸워본 적이 없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손님에게 제사에 쓸 생선을 팔았는데,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손님은 돈을 냈다고 했다. 한두 푼이 아니었지만 우선 제사를 지내야 하니 생선을 일단 가져가라고 했다. 이후에 그 손님이 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돈을 안 준 게 맞다며 돈을 가져왔다. 손님은 그렇게 단골이 됐다. 팔았던 생선에 문제가 있다고 불평하면 한 마리를 더 주기도 한다.
손님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 정 씨의 철칙이다. 단순히 물건을 팔고, 물건을 사는 관계가 아닌 말로 표현 못할 끈끈한 관계가 이뤄지는 곳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돈을 많이 벌거나 갑자기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단골들에게 생선가게 생선을 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장사를 그만둘 때 한 달 동안 생선을 원가로 팔고 갈 생각도 하고 있다. 단골들에게 받은 것을 단골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정 씨의 바람은 지역주민들이 전통시장을 많이 이용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또 정치권에서 전통시장 살리기에 좀 더 힘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도 나타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시장에서 800m 거리에 있는 메가마트가 문을 닫은 날 깜짝 놀랐다. 손님이 늘어난 것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효과가 컸다. 다음 의무휴업에는 물건을 더 가져와야지라고 계획했는데, 아쉽게 한 번 만에 중단됐다.
좌절하고, 힘들었지만 이것이 인생
예기치 않게 생선가게를 하게 됐지만 이제 장사꾼이 다 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에 부치지만 일하기 싫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팔이 아프고, 무릎이 쑤시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고프면 아침밥을 차려 먹듯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히 시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덕계종합상설시장에 대한 자랑도 끝이 없다. 생선이며, 과일이며, 어묵이며 물건 품질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이 잘 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정 씨. 시련과 좌절을 겪었지만 특유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정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물건 값이 다 비싸요. 손님도 힘들고 파는 사람도 힘들어요. 어느 한 가지만 비싸면 괜찮은데, 모든 게 다 비싸니까 그런 거죠. 하지만 손님들에게 비싸다고 하지마라고 해요. 왜냐하면 태풍 피해를 입고 일 년 농사를 다 망친 사람도 많기 때문이죠. 그나마 태풍 피해를 입지 않고, 사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그 자체가 좋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