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 그려진 시바신 ⓒ 양산시민신문
인도인과 불의 색 ↑↑ 한국외대 인도어과
한국외대 지역대학원 정치학 석사
인도 첸나이무역관 관장
한국인도학회 부회장(현)
영산대 인도연구소장(현)
영산대 인도비지니스학과장(현)ⓒ 양산시민신문
인도는 다양한 색의 나라이다. 거리·상점·사원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현란한 색깔의 홍수를 만나게 된다. 인도의 다양한 색깔 문화는 특히 종교생활에서 비롯된다. 국민의 80% 이상이 믿는 힌두교는 제단에 불을 피우는 것으로 종교의식을 시작한다. 여기서 불은 붉은색, 오렌지색, 노란색 등으로 표현된다.
인도인은 신과 인간이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같이 살아간다고 생각하여 신도 인간과 같이 좋아하는 색이 있다고 믿는다. 창조의 신 브라만은 붉은색, 유지와 보존의 신 비쉬누는 푸른색, 파괴의 신 시바는 흰색, 등등. 그러나 종교의식에 주로 사용하는 색은 불을 의미하는 붉은색이다.
살생을 하지 않는 힌두교도는 일반적으로 신에 대한 공물로 살아있는 동물 대신 인도 여인들의 전통의상인 사리를 바친다. 남인도의 힌두들이 암만 신(Amman : 엄마 신)에게 바치는 사리를 암만 셀라이라고 하는데 붉은색으로 염색한다. 뱅갈지역에서는 붉은색 사리를 두르가 신에게 공물로 올린다.
이처럼 붉은색은 신성하고 길한 색으로 알려져 결혼식에도 많이 사용된다. 청첩장은 붉은색으로 장식하고 붉은 글씨를 사용하며, 신부들은 붉은색의 옷을 많이 입는다. 신부의 양미간 사이에 찍는 점 뽀뚜(Pottu)나 여자들의 가르마 시작부분에 찍는 점 신두르(Sindoor) 역시 빨간색이다. 이 빨간 점은 ‘결혼한 여자’라는 표시다.
↑↑ 결혼한 인도여인의 미간에 찍은 뽀뚜, 머리의 가르마 시작부분에 찍은 신두루 |
ⓒ 양산시민신문 |
인도 중서부 라자스탄 출신 상인들은 북인도 최대 축제인 디왈리(11월 초)에 회계를 새로 시작한다. 이들은 붉은색 천과 십자형 무늬로 회계장부를 제본하며, 첫 페이지에 꿈꿈(Kum Kum)이라는 빨간 점을 찍은 후 장부기재를 시작해야 그해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한다.
구자라트에서는 망토모양의 붉은색 가르촐라(Gharchola)를 신랑이 신부머리에 씌워준다. 붉은색 가르촐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원하는 것이다. 인도동부 뱅갈지역 여자들은 결혼했다는 표시로 붉은색 팔찌를 낀다.
인도인들이 상서롭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색은 노란색이다. 태양의 생명력, 부활을 뜻하며, 안드라쁘라데시주의 나이두(Naidu) 가문이 결혼식에 사용하는 색깔이다.
오렌지색은 힌두교의 색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제일 야당인 인도국민당(BJP)도 오렌지색을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다수인 힌두교도들의 표를 결집하려는 목적이 크다.
이처럼 인도인들은 불에 관련된 색깔을 종교의식을 통하여 생활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들이 빨간색이 아닌 여러 다른 색의 점을 이마에 찍기도 한다. 중요한 패션 소도구인 팔찌도 빨간색 일색에서 파란색·초록색·보라색 등 다양한 색이 유행하고 있다. 개방으로 인한 전통문화의 퇴색은 인도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는가 보다.
남인도인과 북인도인의 차이
인도에는 수많은 종족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큰 이질감 없이 살아가고 있다. 백인·흑인·황인종 모두 모여 있다. 남인도 산간지방에는 돌로 새, 쥐 등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종족이 있는가 하면, 남서해안 코친에는 검은 피부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또한 인도 동북부 네팔·부탄 등에는 한국인으로 착각할 만큼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종교란 종교는 인도에서 다 찾아볼 수 있다.
인도인은 이렇게 인종도, 종교도 각기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대체로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길에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인의 성격도 자세히 살펴보면 남인도인과 북인도인이 확연히 구분된다.
↑↑ 오랑가바드 : 일반인 집에 신을 모셔놓은 모습-인도인들은 한 가지 신을 믿는 것이 아니고 여러 신을 믿는다 | ||
ⓒ 양산시민신문 |
보통 남부의 안드라쁘라데시,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케랄라의 4개 주를 남인도라 부르고 그 외의 북쪽 전체를 북인도라 한다.
북인도인은 대개 ‘아리안’이라고 부르고 남인도인은 ‘드라비디안’이라고 한다. 이것은 언어계통에 따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북인도인은 평균적으로 남인도인보다 키가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인도에 가면 자신이 키가 작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자들도 크고 둥근 눈에 흰 피부를 가져 매우 아름답다. 이들이 아리안이다.
반면에 남인도에서는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자들도 대부분 검은 피부에 미인형이 아니다. 이들이 드라비디안이다. 남인도에서 특히 시골에 가면 아낙네들의 모습이 우리나라 옛날 시골에서 흔히 보았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반박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필자는 우리 할머니들의 얼굴을 이곳에서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인도인은 대개 교활하며 계산적이고 남인도인은 솔직하고 감정적이다. 북인도인은 대체로 상대를 이용하려 든다. 따라서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관계도 끝나므로 오랫동안 깊은 관계로 사귀기가 힘들다. 북인도 뉴델리에 근무하던 3년 동안 정말 마음을 터놓고 지낼만한 친구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옆집에 살면서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이를 기록했다가 나중에 문서로 보내는 사람들이다.
남인도인은 북인도인보다는 감정적이고 솔직한 편이며 가끔 화를 내기도 한다. 뉴델리에서는 큰소리로 언쟁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으나 남인도 첸나이에서는 길거리에서 언쟁하고 싸우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남인도인은 북인도인보다 친구로 사귀기 쉽다. 한국사람 기질에는 남인도인이 더 맞는 것 같다.
흔히 북인도인은 정치인, 남인도인은 행정가라고 말한다. 고급 공무원시험에는 동인도의 벵갈인이 50%, 타밀나두가 25% 합격한다는 말이 있다. 동인도 캘커타 일대의 벵갈족과 타밀나두 일대의 드라비다족이 머리가 좋다는 말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도 벵갈인이다.
↑↑ 델리에서 만난 북인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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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사회를 보면 남인도 특히 타밀나두 출신들이 인구비율에 비하여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남인도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행정가이며, 북인도인들은 정치인이라고 표현한다. 남인도인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에서 뛰어나다고 한다.
98년 2월 인도 기업인 27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 할 때였다. 싱가폴에서 모두 모여 비행기를 타기 전에 간단한 모임을 갖고 그룹 리더를 정하자고 하였다. 인도 기업인 27명 중 25명이 타밀나두 출신이고 1명이 뭄바이, 1명이 캘커타 출신인데 뭄바이 출신이 그룹 리더로 선정되었다. 첸나이 기업인들끼리는 출발 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는데도 만난 지 10분도 안된 뭄바이 출신이 앞에 나서 전체를 리드해 버린 것이다.
북인도인은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달변에 액션이 매우 큰데 비하여 남인도인은 머리는 좋으나 약간 소극적이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실감하였다.
기업인에 관한 이야기를 더해보면 남인도 기업인과 북인도 기업인은 출신 배경도 차이가 있다.
뭄바이, 델리 등 북인도 기업들은 오너가 대부분 관리부문 출신인데 반하여 남인도 기업의 오너들은 엔지니어 출신이 많다. 따라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북인도 기업인은 상인 기질을 발휘한다. 즉 오늘 이곳에서 사서 내일 저곳으로 팔면 이익이 된다는 판단만 서면 즉시 행동에 옮긴다. 즉 트레이딩 이라는 관점에서 결정을 한다.
그러나 남인도 기업인들은 대개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그런지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판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제품을 비교해 보고 장기적인 손익 가능성, 기술적인 측면 등을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는 절대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 남인도 첸나이에서 보통 접하는 인도인들 모습 |
ⓒ 양산시민신문 |
기술을 중시하는 남인도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은 구매시 오랬동안 심사숙고하며 우리나라 기업인보다 유럽 쪽 기업인들과 교류하기를 원하는 편이다. 이는 유럽의 기술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무역은 뭄바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남인도 기업이 수입을 하는 경우에도 뭄바이 상인들에게 많이 의존한다. 금융·정보 등이 앞서 유리한 점도 있겠지만, 이러한 기질의 차이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유명한 상인 카스트인 마르와리, 구자라트의 바니아, 파르시들이 뭄바이를 근거로 성장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남북 인도 기업인들의 성향을 볼 때 무역을 하는 경우에는 뭄바이 쪽 기업과 교류하는 것이 좋고 장기적인 투자파트너로서는 남인도인 쪽이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