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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0 양산시민대상 복지봉사부문 수상자 정상모 씨
“봉사란 그저 좋은 것, 기부문화 확산됐으면…”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349호 입력 2010/10/05 09:30 수정 2010.10.05 09:29
어려운 환경 딛고 자수성가… 40여년간 꾸준한 기부

심근경색으로 죽을 고비 넘기면서도 봉사 의지 다져



ⓒ 양산시민신문
“상 타려고 한 거 아니야. 봉사하면 기분도 좋고, 아픈 몸도 아프지 않아”

양산시민대상 수상자인 정상모(69, 삼호동) 씨가 꺼낸 첫 마디다. 길지 않은 말에서 봉사의 참 의미가 묻어난다.

시민대상심사위원회는 2010년 양산시민대상 복지봉사부문 후보에 오른 정 씨의 공적을 인정해 수상자로 결정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특유의 근면 성실함으로 자수성가해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나눔의 삶을 살아온 정 씨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정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월사금을 내지 못해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이스크림 장사로 전전하던 정 씨는 부산으로 건너가 트럭 조수로 일을 시작했다. 운전면허를 따고 18살에 해병대에 입대해 수송대에 근무하다 전역 후 친척 밑에서 2년 동안 일했다. 그때 모은 돈으로 트럭을 사서 운수업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일을 하자 성실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일거리가 늘었고 사업이 번창했다. 돈이 모이자 정 씨는 그 돈으로 고향인 웅상에 논을 샀다.

“어린 시절에 너무 배를 곯아서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었어. 그래서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려고 돈이 모이는 데로 논을 사기 시작했지”

고향에서 전업 농사꾼이 되려 했던 정 씨에게 주변에서 건설자재업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시멘트ㆍ콘크리트블록 공장이다. 이 사업은 당시 새마을운동 바람을 타고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안겨줬다. 성공 이후 정 씨가 한 일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양심을 지키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고. 어렵게 컸고, 돈 벌면 이웃을 돕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 

정 씨는 1972년부터 해마다 설과 추석이면 쌀을 기부하고 있다. 그동안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소년소녀가장, 사회복지시설 등에 기부한 쌀이 3억여원에 이른다. 정 씨가 쌀을 기부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에게 쌀밥 한 그릇만큼 값진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서창초등학교 2회 졸업생인 정 씨는 1983년부터 서창초 앞에서 등굣길 교통정리를 해왔다. 1998년 15년 동안 해오던 교통정리를 건강악화로 못하게 됐을 때도 오히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대형TV를 기증하기도 했다. 

2004년 정 씨의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심근경색으로 집 앞에서 쓰러진 것. 갑자기 쓰러진 그는 서울에서 4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대수술을 받고 심장박동기에 의지해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건강악화라는 시련은 더 큰 사랑을 베푸는 계기가 됐다. 

“하느님이 아직 부족하다고, 봉사활동을 더 하라는 뜻에서 안 데려갔다고 생각했지. 아마 스스로 충분했다고 생각했으면 그때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 

정 씨는 활발한 기부와 봉사활동에 대해 아내 박숙희(63) 씨의 이해 없이는 어림도 없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결혼 이후 40년이 넘도록 그 흔한 외식 한 번 안 할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해온 아내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고.

“나야 기분이 좋아 봉사한다고 하지만 어느 누가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 생활비는 10원, 20원 아끼려고 벌벌 떨면서 몇백만원, 몇천만원 씩 기부해도 바가지를 긁지 않으니 고맙지”

수상 소감을 묻자 “시상식에 입고 갈 정장이 없어 큰일”이라고 대답한 정 씨는 “언제 끝날  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기부하겠다고 주민들에게 맹세했다”며 “내가 본보기가 돼 기부문화가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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