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쇤 나이로 서른네 살. 지나 온 날을 회고하기에는 아직 젊음이 눈부시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서기관 김종문-
1971년 동면 내송리에서 태어나 농사짓고 젖소를 키우시던 부모님 슬하에서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별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동면초등학교에서 육상선수였다고 한다. 전교생 180명 정도였던 작은 시골학교라 대부분 군 대회에 한 종목씩은 참가하였으니 별달리 선수랄 것까지는 없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활달했던가 보다.
"양산에서 열렸던 체육대회에 나갔다가 대변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보고 한참 웃다가 400m 릴레이에서 대변국민학교에 아깝게 진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는 공부를 곧잘 했다. 부모님은 그런 그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시킨다. 부산의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를 거쳐 부산사대부고를 졸업하였지만 줄곧 양산의 집에서 통학을 하였다니 그가 정작 고향을 떠난 것은 1990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고대에 재학 중이던 1993년, 제37회 행정고시에 수석이자 최연소(일반행정직)로 합격하고 대학졸업과 함께 1994년부터 공직에 입문. 연수원을 마치자마자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정책조정과 갈등해결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국무총리 행정조정실(현 국무조정실)을 선택하였단다.
"처음에 맡은 업무가 문민정부 초기의 개혁운동이었던 세계화추진업무였습니다. 세계화 구상을 구체화하고, 분야별 과제를 총괄하는 일과 함께 사법개혁의 실무를 맡았지요. 현재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 1995년에 추진된 사법개혁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법률서비스 시장의 확대와 개선에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보람 있는 일이었죠."
1996년 3월부터 1999년 6월까지 40개월간 해군장교로 복무하고, 전역 후 그는 다시 총리실로 복귀하여 규제개혁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2000년부터는 국무조정실장의 비서관을 1년 6개월 동안 역임했는데 그 당시 만난 사람 중에 현재 열린우리당 양산시지구당 지구당발전위원장인 송인배 위원장이 있습니다. 저는 국무조정실장 비서관, 송 위원장은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 비서관이었죠. 양산시민신문을 보니 송인배 위원장이 우리 고향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고 하던데 지지여부를 떠나 큰 인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1년부터 국무조정실의 업무를 총괄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대 국회업무를 담당하던 2002년 서기관으로 승진하였다.
공직수행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2000년부터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면서 정책조정이라는 주제로 2003년도에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니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한 셈이겠다.
아마도 그의 지적 탐구는 끝이 없나 보다. 올해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의 명문사립대학인 Duke University로부터 이미 입학허가를 받아 놓았다고. 오는 6월쯤 출국할 예정이란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출향인이 된 그의 고향 양산에 대한 바람과 기대는 무엇일까?
"대학시절 지방자치론을 배울 때 양산의 지방재정자립도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중에서도 매우 높고, 공업, 농업, 수산업, 관광업 등이 고루 발전한 지자체라는 설명을 듣고 무척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양산의 현재 인구가 이미 20만을 넘어섰고, 신도시의 확장사업과 부산대학 제2캠퍼스 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질이 같이 높아져야 한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개발과 보전이 조화된 가운데 보다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뻗어나갔으면 합니다."
앞으로 직업관료로서 '잘'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는 그는 특히 정책조정과 갈등해결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실제에 적용하는데 있어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기회가 닿으면 지방행정경험도 쌓고 싶다고.
재경양산향우회 동면 이사를 맡고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향수를 달래고 있는 양산사람 김종문 서기관-
99년,부친상을 당했을 때,한달음에 달려와서 큰일을 치러주었던 고향 친구들과 선ㆍ후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한없이 따뜻해진단다. 자주 찾아보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늘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이병진,김병철,오성조,권용삼… 모두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들이란다. 고향집에는 어머니가 계시고,시집간 누나가 상북에,큰 집도 양산에 있어서 설추석명절 때와 아버지 기일 등 1년에 너 댓 차례 양산을 찾고 있다고.
"고향을 떠나와 있지만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소식을 궁금해 하곤 했는데 양산시민신문이 배달되어옴에 따라 이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고향을 위해 매우 소중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출향인사들에 대한 그리움의 소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정론지로서 발전해 나가길 기원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등 지방화 시대의 전개가 보다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과정에서 양산의 시정과 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통찰력을 가지고 정론을 형성해서 양산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신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나와 고모가 살고 있는 석계에 조류독감이 돌아 무척 걱정이라며 관련 주민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고, 조류독감으로 인한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애틋한 심정을 드러내는 그는 어쩔 수 없는 양산사람이다.
동갑내기이며 부산사대부고 동기동창인 아내와의 사이에 네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