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전남 함평군에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12인승 합기도장 승합차에서 내리다 왼쪽 소매가 문에 끼였다. 학생은 차량과 함께 10m 가량 힘없이 끌려가다 바퀴에 깔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고 당시 차량에는 어린이 6명과 운전자만 타고 있었을 뿐 다른 인솔자는 없었다.
채 싹을 틔워보지도 못하고 한 어린 생명이 꺼지는 안타까운 어린이 통학차량 사고. 이를 막기 위해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의무를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세림이법’이 발효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다 부작용까지 있어 사실상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없는지 조명해본다.
신체는 물론 정신이 미약한 어린이는 늘 보호자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이 미치지 않는 순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거론한 사건처럼 실제 어린이 통학차량에서 한 순간 방심 또는 안일한 안전의식으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세림이법’은 이러한 안타까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어린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키우기 위해 발효됐다. 2013년 충북 청주에서 3세 김세림 양이 통학차량에 치여 숨지면서 인솔교사 탑승 등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의무를 대폭 강화해 개정한 도로교통법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특수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학원, 체육시설 등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모든 통학차량에 적용된다. 2015년 1월 29일부터 시행했지만,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운영하는 소규모 학원은 2년 유예기간을 뒀다.
지난달 29일, 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인솔교사 탑승이 의무화되자 양산지역 학원과 학부모가 상반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학부모는 범칙금이 적은데다 단속조차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불안해하는 반면, 학원은 인건비 부담으로 영세 학원 적용은 무리라고 반발하고 있다.
7살 딸을 둔 김아무개(37) 씨는 “아이 혼자 학원 차에서 내리기에 항의했더니 다음날 성인이 아닌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돼 보이는 언니가 함께 탑승해 인솔을 했다”며 “범칙금이 20만원 남짓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느슨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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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영세학원은 동승 인솔교사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 학원 운영자는 “양산지역 500여개 학원 가운데 70~80%가 원장이 직접 차량을 운행할 정도로 원생 감소로 힘겹게 운영하고 있는데, 새로운 인력을 고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산시학원연합회에서는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학원생에 한해 학교 등교를 도왔던 아침 차량운행을 전면 폐지하자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통학거리가 가까운 신도시지역은 가능하지만 학원 차량 없이는 통학을 할 수 없는 시외지역은 극심한 학부모 반발이 예상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골치 아픈 통학 차량을 없애고 자가용으로 학생을 실어 나르는 학원도 일부 생겨나고 있어 도리어 아이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원연합회 관계자는 “현실 적용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이 2년 유예기간 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림이법은 또 하나의 탁생행정”이라며 “지금이라도 초등학생 경우 동승자 대신 운전자가 내려서 승하차를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안전관리 자격증 제도 등을 도입해 안전기준을 높이는 등 현실성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양산경찰서도 현재 학원 상황을 고려해 단속을 적극 나서지는 않고 있다.
경찰서 관계자는 “경남지방청 지침에 따라 적극 단속보다는 신호위반, 아동안전띠 미착용 등 다른 위법행위가 적발되면 동승자 탑승 여부까지 같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워준다는 방침”이라며 “다만 어린이 안전이 후퇴하지 않도록 통학차량 운전자 연수를 강화할 예정이며, 이주에 열리는 학원연합회 연수에서 관련 안전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산시의회 이정애 의원(자유한국, 비례)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을 빚는 법이 있을 수 있는데, 무조건 이해 당사자들에게 지키라고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 통학차량 안전지도사로 취업할 수 있도록 연계사업을 추진하는 방안 등 지자체 차원 보완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어린이 안전도 확보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점에서 일석이조 사업으로,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