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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청춘은 있다.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최고’의 시절. 사람뿐 아니라 마을도 마찬가지다. 한때 주변을 통틀어 가장 번성했던 마을. 롤러스케이트장에는 이웃 마을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와서 놀 정도였고, 5일 장이 열리면 봇짐장수들이 100리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왔던 동네. 지금은 도로 맞은편에 들어선 마천루들과 비교해 왠지 더 왜소해 보이는 마을. 바로 물금읍 서부마을이다.
ⓒ 양산시민신문 |
서부마을은 현재 310세대 정도가 산다. 이 가운데 90가구 정도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또는 장애인 등 저소득층이다. 주민 연령대를 보면 80% 가까이가 65세 이상 어르신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은 딱 한 집뿐이고, 중ㆍ고등학생 가정도 두어 집 정도다. 김지근 서부마을 이장은 “아이들 뛰노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서부마을은 사실 30년 전만 하더라도 활기 넘치는 마을이었다. 읍사무소 소재지로 시내 지역을 빼면 양산지역에서 가장 번화가였다. 기차역을 이용해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이 넘쳐났고, 시내를 오가기 위한 버스승강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범어지역에 택지가 조성되면서부터 서부마을은 물금지역 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서부마을과 경계가 붙어있는 동부마을도 마찬가지. 범어지역에 이어 양주동 일대 신도시 조성을 시작하면서 동ㆍ서부마을의 ‘청춘’은 돌이킬 수 없는 옛것이 됐다. 최근에는 마을 앞에 수천 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섰다. 이들 아파트로 물금읍 인구는 8만이 넘었지만 도시 성장은 왠지 남일 같기만 하다.
↑↑ 서부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보면 신도시에 들어선 아파트가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 양산시민신문 |
서부마을 주민들은 신도시가 발전할수록, 물금읍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꾸만 소외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주민들은 시대가 달라진 만큼 그런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임을 인정했다. 대신 마을 스스로 살아남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이 주거환경개선사업이다. 2010년 시작한 이 사업은 국ㆍ도비와 시비까지 90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기존 도로를 넓히고 새로운 도로를 개설했다. 마을에 필요한 주차장도 새로 만들었다. 비가 새던 마을회관은 새로 건축해 지금 동네 사랑방이 됐다.
↑↑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새로 정비한 마을 안 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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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부마을은 신도시 개발로 마을이 쇠퇴할수록 대신 공동체를 굳건히 했다. 마을이 위축될수록 남은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주거환경개선사업 효과를 경험한 주민들은 2014년 창조마을 만들기 사업에 도전했다. 창조마을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정보통신(ICT) 기반 체감형 마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농촌 교육, 의료, 복지 등 생활여건 개선과 농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업이다.
서부마을은 2015년 사업 설계에 들어가 오는 2017년 사업 마무리를 계획하고 있다. 물금역 주변에 넝쿨 식물로 터널을 만들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김지근 이장은 “창조마을 사업은 일단 1차 사업이 잘되면 추가로 40~80억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만큼 우선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말 마을 대동회에서 주민들도 뜻을 모아 다들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새로 조성한 마을 공용주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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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마을이라고 신도시 생활이 전혀 부럽지 않을 순 없다. 아직 도시가스도 공급 안 되는 집이 절반이다. 목욕탕 하나 없어 매번 버스를 타고 다른 마을까지 원정을 가야 하는 불편도 그대로다. 하지만 신도시를 부러워하기보단 그냥 마을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마을 주민 모두 알고 있다.
“우리 동네 사람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말년에 무슨 큰 욕심이 있겠나. 그저 자식들 걱정 덜 시키고 마을 사람끼리 큰 다툼 없이 가는 날까지 편히 살다 가는 게 전부다. 아파트 생활 부러워할 것 없다. 동네 사람끼리 친구 삼아 같이 살아가는 게 우리 동네다” 노인정에서 만난 한 70대 어르신 말이다.
김 이장도 “도시가 발전하는 만큼 마을은 쇠퇴해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찾고 바꾸며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신도시와 비교하면 우리가 점점 왜소해지니까 오히려 마을 주민끼리 더 뭉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서부마을 주민들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주민들은 신도시와 자신들 삶은 완전히 구분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신도시는 개인의 삶이고 우리는 공동체가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끼리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고 마을 일이라면 서로 앞장서서 나서는 공동체 모습을 서부마을 주민들은 최상의 선택이라 믿고 있다. 신도시에 생긴 높은 아파트가 마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서부마을은 원망도 부러움도 없이 여전히 ‘마을’의 모습으로 ‘도시’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