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산시민신문 |
한지의 또 다른 이름인 닥종이. 닥종이 공예는 만드는 기법에 따라 지호공예, 지승공예, 지장공예, 전지공예, 색지공예, 지화공예, 후지공예, 닥종이 인형 공예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많은 닥종이 공예 중 닥종이 인형 공예만 20년간 몰두한 김라숙 씨는 양산미협 소속 회원 중 유일하게 닥종이 인형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전통이자 옛 추억을 선물하는 닥종이 인형이 많은 사람에게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화려함보다는 정겨움이 더 잘 묻어나는 인형, 현재 우리네 모습보다는 세월에 잊힌 어린 시절 기억을 담아내기 좋은 인형, 우리의 전통으로 빚어내 투박한 모습이지만 섬세한 추억을 간직하는 인형. ‘닥종이 인형’과 20년째 사랑에 빠진 김라숙(63, 중부동) 씨가 말하는 닥종이 인형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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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난로 앞에 모여 앉은 아이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상을 차리는 엄마와 그 옆에 앉아 재잘거리며 반찬 하나씩 집어 먹는 아이들, 함께 뒹굴며 친구와 어울리는 아이들… 다 우리가 살았던 옛날 모습이잖아요. 기억 속에 있는 그때를 닥종이 인형으로 담아 놓으면 그때 그 시절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보기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생기고요”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하던 김 씨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공예를 전공했다. 1976년 대학 졸업 후 자신에게 딱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 공예란 공예는 전부 시도했다. 그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에만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 씨가 ‘닥종이 공예’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년. 그는 다양한 공예를 해봤지만,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마술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오직 닥종이 공예뿐이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조금 불편해요. 그러다 보니 톱 같은 큰 도구를 다루기에는 제가 중심을 잘 잡지 못해 위험한 상황이 종종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앉아서 손으로 할 수 있는 공예를 찾았어요. 그중에 닥종이 인형이 있었고요”
닥종이 인형은 인형 몸 틀에 닥종이를 한 겹 한 겹 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만 탄생한다. 겹겹이 쌓인 종이마다 작가의 정성스런 손길이 담겨서인지 자연스러우면서도 섬세한 표정과 몸짓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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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 인형 하나 만드는 데 최소 1개월이 걸리는 만큼, 작품에 대해 김 씨가 가지는 애정 또한 각별하다. 시간과 정성으로 빚어내는 예술이기에 닥종이 인형은 김 씨에게 자식과 다름없다.
“선풍기나 인공적인 힘으로 건조할 경우 1개월 정도 걸린다는 거지, 자연의 힘으로 인형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3개월 이상은 걸리죠. 제일 중요한 과정이 바로 ‘건조’에요.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살짝만 손대도 어그러져 버리니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중요해요. 저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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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닥종이 인형만을 고집했지만, 그의 작업실에는 생각보다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작업실에 있는 작품은 이제 10여점. 김 씨는 자식 같은 작품이지만, 과거 흔적은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어 옛날 작품은 많이 없애버렸다고 했다. 없애버린 작품이 아깝진 않을까 싶었지만, 김 씨 옛 작품은 대부분 새로운 작품으로 되살아난다. 닥종이 재질을 활용하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이라도 물에 불려놓으면 다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김 씨가 최근에 사랑에 빠진 닥종이 인형은 바로 ‘소녀상’. 오는 9월에 열릴 양산미협 전시회에 제출할 작품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소녀상을 자랑했다.
“완성될 때쯤 제가 소녀상에 얼마나 뽀뽀를 많이 했는지 몰라요. 제가 만들었지만 너무 예쁜 거 있죠. 또 소녀상 작업을 하다 보니 다음 작품에 대한 영감도 금방 떠올랐죠. 다음에는 조선 여인상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최근에 천 아트도 배웠는데, 그걸 응용해서 한복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할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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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 인형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으로 넘치는 김 씨지만, 닥종이 인형에 대한 대중의 관심 부족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형을 작품으로 보는 시선이 부족함은 물론, 인형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과 노력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
“전시회를 하면 최대한 관람객 가까이 작품을 두고 싶은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우선 손부터 대고 봐요. 이것도 작가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인데 그런 거 없이 일단 재미있고 신기하니까 작품에 손부터 대더라고요. 전시가 끝나면 부서지고 손 때 묻고 온갖 고생은 다 하고 제게 돌아와요”
김 씨는 이런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전통 문화이자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김 씨 역시 더 활발하게 활동해 닥종이 인형을 알리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야에 묻혀 있던 은둔형 작가였는데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네요. 무한한 매력을 가진 닥종이 인형이 양산시민에게 더 큰 감동과 추억을 선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