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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부 도시

인구 30만, 예산 1조원 도시, 양산
품격 있는 도시와 졸부 도시 차이
성장을 과시하기보다 사람을 배려
도시 철학, 시민 참여 재점검 필요

이현희 기자 / newslee@ysnews.co.kr입력 : 2017년 12월 05일
 
ⓒ 양산시민신문  
졸부(猝富), 벼락부자는 의도치 않게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을 말한다. 졸부라는 말 속에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졸(猝)이라는 한자는 ‘빨리, 갑자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졸병을 나타내는 졸(卒)과 옹졸하다는 졸(拙)의 의미를 동시에 표현하기도 한다.

흔히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나타나는 졸부는 재산만 많을 뿐 교양과 예의가 부족한 것으로 묘사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아 부를 축적하다 보니 최소한 교양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진 것을 과시하기 위해 사치와 허영에 사로잡힌 인물로 표현한다. 그들에게 겸손이란 미덕은 ‘갖지 못한 자’의 푸념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른바 사회 고위층이 갖춰야 할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윈 안중에도 없다.

가진 것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졸부들은 오늘도 영화나 드라마 속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잊을만 하면 뉴스에 나오는 재벌 2, 3세들의 도덕적 일탈이나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이들 모두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경멸하면서도 때론 부러운 시선을 바라보곤 한다. 한때 광고 속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온 국민에게 유행했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는 황금만능주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졸부 근성은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비단 졸부 근성은 사람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있다.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눈부신 외적 성장만을 강조하는 도시 운영은 결국 졸부 근성과 다를 바 없다.

졸부 도시를 만드는 이는 도시를 운영하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도시 운영에 대한 명확한 철학 없이 그때그때 시류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 속에서 품격을 잃은 도시, 졸부 도시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양산시가 인구 30만명을 넘어서고, 예산 1조원 시대를 맞이했다.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가난한 농촌에 불과했던 양산이 말 그대로 환골탈태라도 한 듯 변해버렸다. 그 시간 동안 과연 우리는 도시 성장 규모에 걸맞은 사회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을까? 지금도 곳곳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준비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낙관하기 어렵다.

졸부는 최소한 갖춰야 할 교양이나 인격이 부족하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도시에 비춰보면 도시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문화적 자산과 비교해볼 수 있다. 개발 위주 성장 정책을 펼치는 동안 우리 문화적 자산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전통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정체성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민 개개인이 낱개로 흩어진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시민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도시 문화가 있고 없고 차이는 이름만 대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세계 도시와 양산이 가지고 있는 차이다. 축제 성공 여부가 유명 연예인 출연 여부로 결정되는 현실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또 하나 졸부의 특성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남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졸부는 다른 이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져 더욱 다른 이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 같은 특성을 도시에 비춰보면 졸부 도시란 시민 참여가 없는 도시다. 중요한 정책 결정과 사업 추진 과정에 시민 참여 없이 일부 정책결정권자와 기득권 중심으로 도시를 운영하는 것이 바로 졸부 도시의 특성이다. 말로는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시민이 없는 수많은 정책이 오늘도 펼쳐지고 있다.

시민이 도시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만드는 일은 오늘날 민주주의 도시가 갖춰야 할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역정치권이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마치 시혜(施惠)처럼 정책을 펼치고, 도시를 운영하는 이들이 도시의 주인인 시민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구 30만, 예산 1조원 도시, 양산. 전국에서 가장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양산이 지금 걸어가는 방향이 혹시 졸부 도시는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이현희 기자 / newslee@ysnews.co.kr입력 : 2017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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